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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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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2) : "두려움 전염병"
  • 설교일2020-08-09
  • 성경본문신명기 20:1~9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208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9.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 군기가 빠지면...

혹시 ‘당나라 군대’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군대 갔다 온 분들 많이 들어봤지요? 군대에서 “너희들 당나라 군대냐?” 소리 참 많이 하는데 어떤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부르냐? 군기 빠진 군대, 오합지졸 같은 군대를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이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그 어원이 확실하지 않아서 도대체 왜 군기 빠진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부르는지 설만 무성하지 정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세계최강의 나라였던 당나라지만 나중에 나라가 약화되면서 군대가 연전연패하고 수도까지 함락된 적이 있어 이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일본군이 중국군을 깔봐서 쓴 말이라고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이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고 오직 우리나라만, 그것도 군대에서만 쓰는 말입니다. 누구도 이 말의 정확한 어원을 모른다고 하네요.

아무튼! 우리나라 군대에서 유독 군기가 빠진 오합지졸 군대를 일컬을 때 쓰는 이 말, 저는 쓰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군대가 상당히 걱정입니다. 저의 두 아들도 군대를 다 갔다 왔지만 요즘 군대 가는 젊은이들 중에 유독 나약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도 많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훈련 세게 시키는 군단장(3성장군)을 해임해 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넣는 등 끊임없이 부대 운영에 간섭을 하질 않나, 병사들에게 핸드폰을 허용하다 보니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 군대가 이 ‘당나라 군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군대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는 군목을 했던 사람이라 군대에 대해 관심도 많고 특별히 애정도 많습니다. 나라가 걱정이고, 안보가 걱정이고, 군에 간 우리 자녀들의 안전이 걱정이라 하는 말입니다.

군대의 생명은 군기다! 군에서 참 많이 듣던 말입니다. 군은 절도 있는 군기와 기강을 철저하게 유지해 언제든지 적과 싸워 이길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군기가 빠지고 기강이 사라지면 군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군대의 생명과도 같은 이 군기, 기강을 가장 크게 해치는 적이 뭐냐?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대는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거든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라는 참 특이한 전쟁이 일어납니다. 포클랜드 제도는 남대서양 최남단 아르헨티나 바로 옆에 있는 섬들인데 당시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을 아르헨티나 군대가 기습공격 해서 전쟁이 일어났어요.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군부출신 독재자인데 물가폭등, 경제불황, 정치불안 등 국내 상황이 아주 어려워지자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영국이 지배하던 포클랜드를 침공한 겁니다. 당시 포클랜드 주둔 영국군은 겨우 100여명, 아르헨티나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기습해서 쉽게 포클랜드를 점령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불과 74일 만에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끝나고 맙니다. 영국군이라고 하니까 2차대전 때 독일 히틀러와 맞서 싸우던 대단한 군대가 생각나십니까? 아닙니다. 1982년 당시 영국은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었고 나라에 돈이 없다보니 군대는 더 엉망이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오히려 아르헨티나 군대의 병력이나 무기는 영국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 우세였어요. 그런데 왜 이 전쟁이 불과 74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참패로 끝나고 만 걸까요? 바로 병력이나 무기가 아닌 ‘군기의 차이’였던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의 차이’지요.

당시 아르헨티나 군인들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 버려진 불모지나 다름없는 포클랜드를 왜 점령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훈련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투기들은 전투 중인데도 비가 오면 위험하다고 이륙조차 안 했다지요. 그러니 영국군이 상륙해서 진격하자 압도적인 병력인 아르헨티나 군은 몽땅 항복을 합니다. 군함 17척, 항공기 100여대를 무기력하게 잃고 포로는 만 명이나 됐습니다. 당시 쳐들어간 영국군은 4,500명인데 아르헨티나군 포로는 만 명이었습니다. 말이 됩니까? 병력이 두 배 이상 많은데 총 한번 제대로 안 쏴보고 두려워 떨며 무조건 항복한 겁니다.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게 만든 겁니다.


❚ 성전(聖戰), 거룩한 전쟁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유난히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이 위치한 지역이 위로는 메소포타미아, 전통적인 강국인 앗수르, 바벨론, 바사 제국이 위치한 땅이고, 아래로는 애굽(이집트)이라는 강대국이 자리 잡고 있어 그 사이에 끼어있는 화약고 같은 지역이라 강대국의 침략과 이웃 민족들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은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 같은 상황이지요. 우리도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 아래로는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 5천년 역사 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그렇게 수없이 등장하는 전쟁 장면을 보면 이스라엘의 전쟁에는 아주 특별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聖戰), 즉 ‘거룩한 전쟁’이라고 부르는 개념입니다. 아니, 전쟁이면 전쟁이지 무슨 거룩한 전쟁이 따로 있냐? 하실지 몰라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그냥 적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전쟁,”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군의 숫자가 아무리 우리보다 많고 무기가 더 좋아도 하나님이 이 전쟁을 이끄시고 함께 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조건 승리했던 것이고, 반대로 아무리 우리 쪽 병사가 많고 무기가 좋아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전쟁이 아니면 무조건 패한 거에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신명기 20:1은 바로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나가서 적군과 전쟁을 할 때 적군의 말과 병거와 병력이 너보다 월등하게 많아도 두려워하지 마라! 왜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무조건 이기기 때문에! 이게 바로 구약에 나오는 ‘성전(聖戰), 거룩한 전쟁’이라는 개념입니다.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참 많이 쓰던 말이 있습니다. 오늘 따라 설교의 특성 때문에 군사용어를 참 많이 쓰게 되네요. 바로 ‘유형전력(有形戰力)’과 ‘무형전력(無形戰力)’이라는 말입니다. ‘유형전력’이란 형태가 있는 전력, 즉 병력의 숫자나 무기, 본문에 나온 말과 병거, 요즘으로 치면 탱크, 전투기, 미사일, 핵무기 등등 눈에 보이는 무기들을 뜻합니다. ‘무형전력’이란 뭐냐?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 즉 아까 말한 정신력, 군기, 기강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까 포클랜드 전쟁 이야기도 했지만 현대전에 있어서도 얼마나 좋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냐? 얼마나 병력이 많냐? 이런 ‘유형전력’보다 병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높고 싸우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냐? 이런 ‘무형전력’이 훨씬 중요하고 전쟁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은 비록 우리 병력이 훨씬 적고 무기도 형편없지만 거인 골리앗과 싸운 다윗처럼 우리에게는 ‘만군(萬軍)의 여호와 하나님’(여기서 ‘만군’이란 많은 군대를 뜻합니다.)이 수많은 군대,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신다,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무조건 이긴다, 이런 신앙, 이런 ‘무형전력’으로 철저하게 무장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던 겁니다.

이런 원리는 오늘날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이 ‘무형전력’이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무형전력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신앙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참모총장 등이 뜻을 모아 ‘1인 1종교 갖기’ 운동을 한 거에요. 당시 군대에서 인정하던 종교는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셋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일에 내무반에 있지 말고 무조건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종교행사에 가라! 명령을 내린 거지요. 그래서 그 당시가 군의 종교율이 최고였어요. 내무반에 남아 청소하고 빈둥거리느니 교회, 성당, 절 가면 초코파이도 주고 국수도 끓여주고 잘 해줬거든요? 그래서 기독교가 군대 내에서 최고 종교율을 갖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슬며시 이 ‘1인 1종교 갖기 운동’이 사라지고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종교를 ‘안 가질 수도 있는 자유’를 강조하면서 군대의 종교율이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종교인구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결과에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겁니다. 군대에 있어서,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이걸 군대에서는 ‘정신전력’이라고 부릅니다. 그 정신전력, 가장 중요한 무기요 전력인 이 정신전력에 있어 가장 큰 적은 뭐냐? 바로 두려움이라는 적입니다.


❚ 두려움 바이러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 본문인 신명기 20장에서는 첫 절인 1절에 이렇게 분명히 못을 박고 시작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읽읍시다.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아까 읽을 때와는 빨간색 강조점이 다르지요? 앞에서는 “말과 병거와 백성이 많을지라도” 여기에 강조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병거와 말이 많고 병력이 많아도 두려워하면 무조건 진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뜻인 겁니다.

그러더니 5절부터는 꽤 길게 “이런 병사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4가지 경우가 나오는데요, 첫째는 5절에 나온 대로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 둘째는 6절에 나온 대로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 셋째는 7절에 나온 대로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8절에 나온 대로 두려워 떠는 병사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겁니다. 이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쟁이라는 게 일단은 병력수가 중요한데, 적과 싸울 때 한 명이라도 병사의 숫자를 늘리는 게 정상인데 왜 오히려 병력수를 줄이라는 걸까요? 여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앞의 세 가지 경우는 그 이유가 ‘염려와 미련’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새 집을 애써 지어놓고 낙성식도 못하고 전쟁터에 끌려왔다, 포도원을 만들고 애써 가꾸었지만 그 과실을 추수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 끌려왔다, 집 생각 포도원 생각, 염려, 미련에 어찌 전쟁에 집중하겠습니까? 더욱이 아리따운 처녀와 약혼까지 하고 결혼식을 못하고 전쟁터에 나오면 달만 뜨면 그녀 얼굴 떠올라 어찌 용감하게 전쟁터에서 싸우겠습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염려와 미련에 사로잡힌 병사는 전쟁에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방해만 되니 돌려보내라는 겁니다. 나아가 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병사 중에 두려워 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 왜? 그 병사 하나 때문에 다른 병사들도 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거다, 즉 두려움에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뭡니까? <두려움 전염병>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두고 온 집이나 포도원, 약혼녀에 대한 염려와 걱정, 미련 이런 것들이 결국 그 병사에게 두려움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더 위험한 것은 그 한 병사의 두려움이 다른 병사들에게도 급속도로 전염되고 영향을 주어 군대 전체가 두려움에 떠는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그런 병사들을 골라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거지요.

지금 우리 사회와 전 세계는 이 ‘두려움 전염병’에 걸려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바이러스의 공격보다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두려움 바이러스가 무서운 전염병이 되고 만 것입니다. 뉴스에서 완치된 확진자가 동네주민들의 따돌림으로 그 동네를 떠나야 할 지경이 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이 두려움 전염병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 아십니까?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와 마지막 전투에서 초나라 군대를 포위한 후 사면에서 구슬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이 노래 소리를 듣고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생각에 초나라 군사들은 하나둘 진영을 이탈하고 전쟁은 결국 항우의 패배로 끝나고 말지요. 이건 엄청난 심리전입니다. 그래서 현대전에서도 라디오 방송이나 대형 스피커를 통해 적군에게 심리전을 펼쳐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북한의 김정은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최전방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인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러니까 집 생각, 가족 생각, 두고 온 것에 대한 미련과 염려, 이게 결국 두려움으로 연결되어 병사가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하게 만드는 거지요.

기드온이 미디안 대군과 싸울 때도 32,000명의 병사를 단 300명으로 줄인 이유는 두려워 떠는 자, 준비되지 않은 자를 돌려보내고 300명 최정예 용사를 추린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전쟁, 거룩한 전쟁, 성전(聖戰)의 원칙입니다. 세상 전쟁도 그렇지만 특히 하나님의 전쟁에서는 아무리 병력 많고 무기 좋아도 두려워하는 자, 미련과 염려에 사로잡힌 자, 특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무장하지 못한 자는 다 필요 없다! 오히려 아군 사기만 떨어뜨린다! 이런 ‘당나라 군대’ 오합지졸 말고 하나님의 정예용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적 전쟁’에서 바로 그런 병사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코로나19 사태는 이미 질병을 넘어서 영적 전쟁의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영적 전쟁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병사가 되어 어떤 자세로 싸워야 할까요?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싸우신다! 하나님이 이기신다!”(따라 하기) 선포하는 사람! 우리 앞에 어떤 두려운 일, 환난 닥쳐와도 담대하게 이기는 그 사람! 바로 하나님의 정예용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앞서 소개한 포클랜드 전쟁 이야기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이 전쟁에서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최전방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한 것이지요. 영국정부가 위험을 감안해 후방으로 전출하기를 권하자 왕자는 단호하게 “No!” 했고, 제일 반대한 사람은 누구냐? 엄마(여왕)에요. 결국 헬기조종사로 최전방에 투입됩니다. 아르헨티나 병사들은 병력도 많고 무기도 월등한데 두려움에 떨며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조차 몰랐는데 영국은 왕자가 최전방에 나가 싸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전쟁은 끝난 거 아닙니까?

지금 이 코로나라는 영적 전쟁터에서,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겪어야 할 무수히 많은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두려움 전염병을 극복하고, 마귀들과 싸워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믿음으로 자원하는 정예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아닌 하나님이 싸워 이기실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오늘 코로나 상황에서도 창립 74주년을 맞은 우리 효자교회의 사명이요, 우리 교회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임을 믿으시고 우리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싸워 이기게 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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