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광야학교를 졸업하셨습니까? (4) : "엘리야"
  • 설교일2020-07-12
  • 성경본문열왕기상 19:1~8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240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플라토 신드롬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날 죽이세요.” 명색이 모든 선지자 중 가장 권능 있는 선지자요 하나님의 능력의 종인데 왜 이런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걸까요? 그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 선지자 말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큰일을 치루고 난 뒤, 엄청난 일과 엄청난 성취를 이루고 난 뒤 갑자기 찾아온 허탈감과 공허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목표를 이루고 난 뒤 갑자기 찾아오는 공허와 허탈감 말입니다. 저도 겪어본 일인데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이런 현상을 플라토 신드롬(Plateau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플라토’란 ‘Plateau’ 고원(高原)이라는 뜻입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평지 말입니다. ‘플라토 신드롬’이란 높은 고원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목표가 있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만, 그 고원에 오르고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위기를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런 ‘플라토 신드롬’은 심리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큰일을 치르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다음에는 이런저런 심리적, 신체적 위기를 겪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비전을 세워야 한다!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뜨겁게 할 꿈 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고 난 후 이 ‘플라토 신드롬,’ 공허와 허탈감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경험해보니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너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 이유가 아니라 마귀의 궤계(詭計)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성공하는 것을 아주 싫어해서 어떻게든 방해를 하는데,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런 계교를 씁니다. 큰일을 이루고 난 우리에게 허탈감이나 공허함을 심어줘서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거 봐라! 암만 교회 일 열심히 해도 소용없잖아? 저렇게 힘들어지는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해?” 이런 소리 하게 만드는 겁니다. 결과는 대성공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마귀는 특히 훌륭한 신앙인들이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런 계략을 쓸 때가 많습니다.


❚ 갈멜 산 이후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엘리야 선지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걸 알려면 오늘 본문 바로 앞 장인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갈멜 산 사건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임금은 아합 왕이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이방나라인 시돈 출신으로 시집 올 때 자기가 섬기던 우상을 가지고 옵니다. 왕비가 시집 와서 먼저 남편 아합을 맹신적인 바알 숭배자로 만들었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우상숭배에 물들였지요. 바알 우상,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양성하고 조종했으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여서 여호와 신앙을 뿌리 뽑는 일에 앞장섰던 성경 최고의 악녀(惡女)지요. 이렇게 온 이스라엘에 만연한 바알 숭배 아세라 숭배에 맞서 하나님의 종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됩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불러 그들과 850:1의 엄청난 승부를 펼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나? 엘리야 선지자의 완벽한 KO승으로 끝납니다. 850명의 우상 선지자가 자기들 신에게 온갖 정성을 바치며 빌었건만 아무 응답이 없고, 엘리야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웁니다. 엘리야는 완패한 우상 선지자들을 한 명도 살려두지 않고 다 죽임으로서 이 위대한 승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위대한 승리는 선지자 엘리야의 개인적 승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참된 신이시며 바알 아세라 같은 우상은 거짓 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서 이스라엘에서 우상을 완전히 몰아내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가 온 거지요.

그런데 이 위대한 갈멜 산 사건 직후,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 19장에 이르러 갑자기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엘리야가 플라토 신드롬에 빠진 이유는 분명해요. 이러다가 내가 섬기는 우상종교가 완전히 파멸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낀 이세벨 왕비는 엘리야 선지자를 하루 안에 반드시 죽이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두려움에 벌벌 떨지요. 바로 직전 갈멜 산에서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 앞에 조금도 흔들리거나 떨지 않던 그 당당한 선지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엘리야는 벌벌 떨며 황급히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 광야로 도망합니다. 3절 말씀 읽읍시다.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벗어나 남 왕국 유다의 저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걸음아, 날 살려라” 죽어라고 도망간 겁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다스리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벗어나 남 왕국으로 피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 왕국 최남단 지역까지 도망갔으니 이만하면 좀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선지자는 안심 못합니다. 혹 이세벨이 보낸 자객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엘리야는 브엘세바까지 간 것으로도 모자라 홀로 브엘세바보다 더 밑에 위치한 네겝 광야까지 들어가 하룻길(30km 정도)을 갑니다. 브엘세바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저 강우량 선이 지나는 곳이니, 엘리야는 이제부터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지역, 누구도 날 쫓아오지 않을 황량한 광야로 하루 종일 수십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도망한 것인데 당시 엘리야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광야로 도망한 엘리야는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합니까? 4절 앞부분 말씀을 읽읍시다.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엘리야는 광야에서 하룻길을 죽어라고 도망하더니 너무 지쳐 광야에 자라는 로뎀나무 그늘로 들어갑니다. 로뎀나무는 이렇게 생겼는데(사진1) 광야에 많이 자라는 사람 키 남짓 높이의 나무입니다. 거친 광야에서 그나마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만한 나무 그늘로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참 우습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한 모습입니다.

어떤 미술을 전공한 성도가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를 그리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로뎀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크고 무성한 나무를 그렸다가(사진2) 나중에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광야에서 실제 로뎀나무를 보고 어이가 없어 한참 웃었답니다. “에게! 이것도 나무야?” 로뎀나무가 ‘나무’라고 하기에 너무 초라했거든요. 너무 초라한 나무라 실망도 했지만 로뎀나무는 가지가 빗자루처럼 뻗어있어서 그늘이 거의 없는데 그 손바닥만 한 그늘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 아닙니다(사진2-1). 이런 그림(사진3)이 차라리 맞다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그런 그늘에서라도 쉬겠다고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선지자의 모습이 참 비참하지 않습니까? 한국교회에서는 로뎀나무가 ‘광야의 그늘’이라고 해서 안식이나 쉼을 의미하고, 교회 휴게소나 카페 이름으로도 많이 쓰는데 실은 축복이나 쉼의 의미보다 비참한 모습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만큼 로뎀나무는 초라한 나무고 그 초라한 그늘에 머리를 들이밀고 지쳐 잠든 선지자의 모습이 더 초라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인 겁니다. 엘리야에게 찾아온 인생 최대의 위기, 엘리야는 그 위기를 피해 광야로 들어갔고, 인생 최대의 거칠고 험한 광야 길을 걷게 된 겁니다. 바로 광야학교에 입학하게 된 거지요. 이걸 알아야 우리가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겁니다.


❚ 엘리야의 기도, 하나님의 응답

자, 이렇게 본의 아니게 광야학교에 입학하게 된 엘리야, 엘리야 선지자는 그 초라한 로뎀나무 그늘 아래서 어떤 행동을 합니까? 이제 4절 뒷부분을 읽습니다.

4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그 초라한 로뎀나무 그늘 아래에서 엘리야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께 “마, 이제 됐습니다. 차라리 지금 제 목숨을 거두어 가소, 마!” 하고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이렇게까지 기도하게 된 이유가 뭘까? 난 우상숭배 권력자들과 우상 선지자들과 목숨 걸고 싸웠는데도 하나님이 날 이렇게 힘들게 하시냐는 불평도 들어있겠지요. 난 이렇게 죽어라고 목숨 걸고 싸우는데 갈멜 산 사건 뒤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실망과 불만도 한 몫 했을 테고, 이까짓 목숨 하나 부지하겠다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 등이 뒤섞여 나온 반응일 겁니다. 이런 복합적 이유 때문에 엘리야는 요즘 말로 완전 멘붕 상태에 빠진 겁니다. 그래서 이럴 거면 차라리 날 죽이라는 참람한(?) 기도까지 하게 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참람한 기도를 들은 우리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 하나님은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엘리야, 투덜거리다 지쳐 잠든 그에게 천사를 통해 숯불에 갓 구은 따뜻한 떡(빵)과 물을 가져다주십니다. 지칠 대로 지쳐 탈진한 엘리야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 이런 좋은 분이에요. 엘리야는 이 빵과 물을 먹고 또 잡니다. 이렇게 먹고 자고를 반복하던 엘리야는 원기를 회복하고 호렙 산으로 갑니다.

호렙 산은 시내 산으로도 불리는 여호와의 산입니다. 호렙 산까지는 어마어마하게 먼 광야길입니다. 8절에 엘리야가 사십 주 사십 야, 사십 일을 밤낮 걸어서 호렙 산까지 갔다고 해요. 아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첫 언약을 맺은 호렙 산에 가서 우상숭배로 파괴된 거룩한 언약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이제 천신만고 끝에 호렙 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동굴에 들어가 머무는데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엘리야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서 물으셨겠어요? 이 질문의 의미는 “끝까지 우상과 싸워야하는 선지자가 왜 그리 낙심해서 여기 와있는 거냐?”라는 뜻입니다. 물론 책망하고 추궁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를 격려하고 사명을 다시 일깨우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엘리야는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10절입니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이런 뜻이에요. “난 잘못한 거 없어요. 저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유별해서 죽어라고 싸웠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저 인간들은 조금도 변화가 없고 오히려 저를 죽이려 합니다.” 이 말 속에는 “날 좀 알아주세요.” 하는 하나님에 대한 투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임전가가 다 들어있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때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려는 하나님 앞에 중보하며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는데 엘리야는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죄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참 치졸한 선지자의 모습이지요.

또한 “여호와를 섬기는 선지자들이 다 칼에 맞아 죽고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라며 외로움과 좌절을 호소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은 “내가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남겨두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위로하신 거지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하나님 뜻도 알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지쳐 죽겠다고 투정하는 선지자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십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시는데 첫 번째로 크고 강한 바람으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지만 거기에는 여호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지진을 일으키시는데 그 지진 중에도 여호와는 계시지 않아요. 세 번째로는 을 보여주시는데 그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즉 크고 강한 바람이나 큰 지진이나 활활 타는 불 같은 강한 상징들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더니 결국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시는가? 12절 말씀 봅니다.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엄청난 권능으로 우상 선지자들을 몰살시키고 바람 같고, 지진과 불 같은 강한 방법으로 원수를 대적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강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원수를 치시는 게 아니라 ‘세미한 소리(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즉 말씀을 통해, 그것도 강하고 센 말씀이 아니라 잔잔하고 조용한 말씀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고 변화시키는 분이라는 겁니다.

오늘날도 우리 크리스천 중에는 바람, 지진, 불 같은 강력한 징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말씀’입니다! 세미하고 부드러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강력한 것이 아닌 부드럽고 조용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적은 “성령의 권능이 넘치는 교회”나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인 겁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말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한 엘리야에게 다시 한 번 사명을 일깨우고 비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너는 즉시 돌아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엘리야에게 기름부음 받은 예후는 반란을 일으켜 우상 숭배자 아합과 이세벨을 척살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몰아내신 겁니다.

사랑하는 효자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엘리야처럼 인생의 광야,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맞으면 어떻게 그 광야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디 기도원 가서 뿌리를 뽑을까?” “누구 좀 능력의 종한테 가서 안수기도를 받을까?” “무슨 좀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이런 방법 아닙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회복시키고 비전을 다시 회복시켜 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코로나 퇴치보다 예배회복기도회복말씀회복찬양회복새벽제단회복이 더 먼저인 거에요.

말씀 맺습니다.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들, 이 광야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광야를 만나고 큰 위기를 맞은 여러분! 우리 효자교회가 교회 밖에서 지치고 탈진하여 오는 성도들이 새 힘을 얻고 문제를 해결 받고비전과 사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facebook tweeter line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