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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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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닥쳐올 때 (4) : "하나님의 평강으로!"
  • 설교일2020-06-14
  • 성경본문빌립보서 4:4~7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314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내적인 평강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루는 배를 몰아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때는 해가 저물 때쯤이었는데 그 배에는 예수님이 타고 계시지 않았지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행하지 않으신 이유는 바로 직전 예수님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자 무리들이 완전 감격해서 예수님을 붙들고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피해 홀로 산으로 떠나 가셨지요.

그런데 예수님 없이 제자들끼리 타고 간 그 배에 큰 위기가 닥쳐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캄캄한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마구 치기 시작한 겁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 갈릴리 바다에서 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 여러 명 아닙니까? 베드로도 있고 야고보와 요한도 있고요. 뭐 이런 일 한두 번 겪어봤겠어요? 처음엔 파도가 치니까 노를 힘차게 저어 십여 리쯤 갔는데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그야말로 일엽편주처럼 흔들리던 배는 금세라도 뒤집힐 것 같은 위급한 상황이 되고 만 겁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그 위기와 절망의 순간 저 멀리서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게 아닙니까? 제자들이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이젠 살았다.” 싶었겠지요. 바로 그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20입니다.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쉽게 말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얘들아, 나다! 내가 왔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해라.”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항해도 언제든지 큰 폭풍을 만날 수 있고 큰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배에 나 홀로 타고 있다면 얼마나 두렵고 힘들겠습니까? 오롯이 나 혼자 그 파도를 맞아야 하고 그 위기를 이겨내야만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배에 나 혼자 탄 게 아니라 누가?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주님이 내 배 안에 계시면, 이 안에, 내 내면 속에 계시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심해도 됩니다. 왜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위기를 몰아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얘야! 하준아! ○○아! 나다! 내가 왔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해라!”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아무리 배 밖에 아직도 파도가 치고 광풍이 불고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잠잠케 할 한 없는 평강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런 평강을,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느끼는 평강을 우리는 ‘내적(內的)인 평강(平康)’이라고 부릅니다. 왜 ‘내적인 평강’이냐? 내 맘 속에 있는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내 내면에 자리 잡은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누리는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은 외적(外的)인 평강, 즉 내 환경이나 상황, 형편이 편안하고 좋은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평강은 외적인 평강이 아니라 내적인 평강이기 때문에 아무리 외부의 상황이 안 좋고 힘들어도 온전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 바깥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내 배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4:27에 이렇게 말씀하신 거에요.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특징이 있어요. 절대 외부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11장은 이렇게 찬양하고 있는 겁니다.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네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이 평강, 주님이 주시는 평강, 내적인 평강을 알고 누리는 사람은요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 평강을 빼앗아갈 수 없고, 어떤 상황과 위기도 그 평강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오늘이 총회가 정한 ‘순교자기념주일’인데, 한국 초대 교회사를 보면 수많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지요. 그런데도 그 엄청난 박해가 결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해를 받던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말 중에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옵니다.

우리는 과 같다. 당신들이 우리를 칠수록, 우리는 더욱더 깊이 박힌다. 그리고 당신들이 더 깊이 박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평온해진다.

 그렇습니다. 박해자들이 더 치면 칠수록 성도들의 믿음은 못처럼 더욱 깊이 박히고, 더욱더 굳건해지고, 깊이 박으면 박을수록 점점 더 평온해지고 평강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내적인 평강’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내적인 평강을 누릴 수만 있다면 우리 앞에 다가온 그 어떤 파도와 위기도 절대 우리를 흔들어 놓을 수 없고 우리의 평강을 빼앗아갈 수 없는 줄 믿습니다! 그 평강을 누릴 수 있으면 반드시 모든 위기와 고통은 주님의 이름으로 물러가게 될 줄 믿습니다!


❚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빌립보서 4:4~7, 오늘까지 이 말씀을 가지고 <위기가 닥쳐올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잠시 지난 설교들을 돌아봅시다. 위기가 닥쳐올 때,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하다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위기, 빌립보 교회가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갈등으로 분열의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은 이런 위기를 이겨내는 힘으로 첫째 기쁨(“항상 기뻐하라!”), 둘째 관용(“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셋째 염려 대신 기도와 간구를 감사함으로 아뢰라, 이 세 가지를 이야기 했잖아요? 이제 사도 바울은 위기를 이겨내는 힘 마지막 네 번째로 뭘 이야기 하는가? 바로 평강입니다. 자, 7절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합시다.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하나하나 뜻을 좀 풀어 가봐야 합니다.

①처음에 “그리하면”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리하면”은 앞에 나오는 ‘기도와 간구’ 즉 “염려 대신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 엄청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왜냐?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②다음으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저는 “하나님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분이다.” 이런 뜻인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 뜻이 아니더라고요. 여기서 ‘지각(知覺)’이라는 말은 알고 깨닫는 것, 인간의 이성과 이해력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이라는 말은 “모든 이성과 이해력을 뛰어넘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이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의 모든 이해력과 이성을 뛰어넘고 초월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요 인간의 이성과 이해력을 뛰어넘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을 주신다는 거에요.

제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내적인 평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뜻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 속에 있는 평강,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때 누릴 수 있는 내면의 평강, 이건 외부의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힘들어도 누릴 수 있는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어떻게 저렇게 파도가 치는데 배 안에서 평안할 수 있어? 어떻게 저렇게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데 나는 평안하다고 할 수 있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평강을 인간의 이성과 이해력을 뛰어넘는, 초월하는 평강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런 놀랍고 신비한 평강을 여러분도 꼭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③다음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 하나님의 평강, 인간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 이 내적인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주님이 풍랑 치는 물 위를 걸어 내 배에 오시는 것처럼 주님이 인생의 풍랑을 만나고 위기를 만난 내게로 오셔서 내 안에 들어오실 때, 그래서 내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때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마지막으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엇과 무엇을 지키신다고요? 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여기서 마음은 사람의 뜻, 감정 등을 의미하고, 생각은 이 마음에서 나온 모든 판단과 계획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평강이 내 모든 뜻과 감정, 계획과 판단을 다 지켜주신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지킨다’는 말이 참 특별한 말입니다. 이게 군사용어에요. 그냥 단순히 지키는 게 아니라 로마 군대의 수비대가 보초를 서며 지킨다는 의미의 전문 군사용어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로마군은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이 막강한 로마군이 마음먹고 지키고 있으면 누구도 뚫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평강’이 당시 세계 최강 로마 군대의 수비대처럼 성도들을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부터 ‘철통같이’(군대용어)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뜻인 겁니다. 원수가 우리를 공격해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염려 근심 걱정을 심어놓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평강이라는 막강한 수비대, 호위대를 보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바로 이런 확신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인생에 풍랑이 닥쳐와도, 아무리 원수가 내 안에 염려와 근심을 심어놓는다 해도, 그 어떤 외적인 환경과 상황이 나를 실망시킨다 해도, 인생의 그 어떤 위기가 닥쳐온다 해도 뭐가 우리를 지켜주신다? 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철통같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도 우리에게 평강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 보험을 들면 안심하고 사실 수 있습니다. 안심보험!” “우리 핸드폰을 사용하시면 안심하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안심케어!” 저마다 나를 믿으라고 내가 안심할 수 있게 해주고 마음에 평강을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줄 수 있을까요? 물론 보험이나 핸드폰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이런 세상의 방법들이 결코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과 평강을 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理性)이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몽주의(啓蒙主義)’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성의 힘은 위대하고 이 이성에 따라 인류가 무한한 진보를 할 것이라는 사상이 계몽주의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무지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몰아내고 인류는 영원한 발전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엄청난 착각임이 곧 드러났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수많은 인류가 죽임을 당한 후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은 900만 명이 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은 민간인을 포함해 5천만 명에서 7천 만 명으로 통계가 나옵니다. 그런데 전쟁으로만 사람이 죽은 게 아닙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최소 5천만 명, 혹은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한국에서도 ‘무오년 독감(戊午年 毒感)’이라고 불렸고 국내에서는 740만 명이 감염되고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잘 모르고 계셨지요? 지난 금요일 기준 우리나라 코로나19 사망자가 277명,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가 419,311명이라고 하니 코로나가 무섭다, 무섭다 해도 100년 전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입니다.

결국 이런 모든 사건들로 말미암아,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에게 평화와 발전과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완전 착각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인류가 전쟁을 그치고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1억이 넘게 죽고, 인간의 이성에 의한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질병을 퇴치한다고 믿었는데 독감 하나에 1억이 죽었습니다.

인류역사가 기록된 3,500년 동안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기간이 단지 286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무려 8천 번의 평화조약이 맺어졌다고 합니다. 과연 인간의 이성이나 평화협정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땅에는 위장된 평화로 가득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평화로운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과 다툼만 가득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별 문제 없이 평안하게 사는 것 같은데 우리 마음, 내면은 평강이 없고 온통 염려와 근심 걱정만이 가득합니다.

지금 현재는 어떻습니까? 코로나19라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좌절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 우리가 쌓아올린 과학과 의학들, 이 모든 인간의 자부심을 한 방에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그 대단한 과학자 의학자들이 지금도 백신이나 치료제를 내놓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없는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뿐입니까? 안 그래도 가뜩이나 나쁘던 경제상황은 이제 최악으로 치달아 가고, 정치 사회 안보 모든 것들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평강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은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평강이요 세상이 빼앗아갈 수도 없는 평강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코로나19라는 대적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인생에 닥쳐올 그 어떤 위기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에서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샬롬’ 하고 인사합니다. 그림을 보면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써있고(오른편으로 왼편으로 읽음), 아래 보면 뜻이 나오지요? ‘평화, 평강, 화평’. 사실 이 ‘샬롬’이라는 인사는 서글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5천 년 역사동안 수없는 전쟁을 겪으면서 “안녕(安寧)하세요?” 즉 밤 새 별 일 없이, 전쟁으로 안 죽고, 맞아죽지 않고, 굶어죽지 않고 잘 보냈냐는 인사말이 생긴 것처럼, 우리나라 못지않게 수많은 전쟁도 겪고 나라도 망해 본 이스라엘 민족은 서로에게 평안을 빌며 ‘샬롬!’ 이렇게 인사했다는 겁니다.

전에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지만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샬롬’을 빌며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샬롬’이 비록 유대식 인사지만, 또한 성경적인 인사이기도 하니 우리도 이 샬롬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사말로 쓰면 좋겠습니다. 그리하면 샬롬이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자, 이제 옆 사람, 앞뒤 사람과 인사할 텐데 뭐라고 인사하자고요? ‘샬롬’ 하고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기 바랍니다! 요즘 참 안 좋은 게 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설교하다가도 여러분이 웃는지 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마스크를 썼어도 확실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서로에게 평안을 마구, 마구 빌어줍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 세상 그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서로에게 임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하면서 ‘샬롬’, 저 옆에 2미터 사회적 거리 떨어져있는 사람도 ‘샬롬!’ 앞뒤 사람도 ‘샬롬!’ 인사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 놀랍고 위대한 하나님의 평강이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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