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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주일설교] 누구에게 예배하러 오셨습니까?
  • 설교일2022-01-23
  • 성경본문역대하 24:1~3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81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칠 세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3. 여호야다가 그를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

❚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본 적이 있습니까? 너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그 사람 너무 믿고 의지하다 어려운 일 당하거나, 이런 일 아마 한두 번쯤 다 겪었을 겁니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친척이나 친한 친구 등 지인에게 당했다는 통계를 보면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모른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사람 믿지 마라.” 소리를 하셨나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사람 믿지 마라.” 소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 안 믿으면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못나도 부족해도 서로 서로 믿고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특히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끼리는 그래도 좀 믿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사람 믿지 마라”가 아니라 성경말씀에 의지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사람 의지하지 마라.” 네, 성경은 “사람 믿지 마라.”고 하지 않고 “사람 의지하지 마라.”고 말씀합니다. 얼핏 비슷한 말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사람은 믿어줍시다. 어찌 됐건 좀 서로 믿어주고 신뢰해 줍시다. 그래야 살지요. 하지만 사람을 ‘의지’하지는 마세요. 누구 대신? 하나님 대신 사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남 왕국 유다의 8대 왕은 요아스입니다. 이 요아스 임금은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어요. 오늘 본문인 역대하 24:1에 보면 요아스는 7살이라는 정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40년이라는 꽤 오랜 기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나 7살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정말 엄청난 풍파를 겪었지요.

요아스 이야기를 하려면 그의 할머니 얘기를 해야 합니다. 요아스의 할머니는 아달랴라는 여인입니다. 지난 수요예배 여전도회헌신예배 때 제가 아달랴에 대해 설교했지요? 아달랴는 북 왕국 아합 왕(최악의 왕)과 이세벨 왕비(최악의 왕비)의 딸입니다. 최악의 우상숭배자였던 어머니 이세벨처럼 우상을 섬긴 아달랴는 남 왕국 유다로 시집을 와서 여호람 왕의 왕비가 되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막내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지만 아하시야도 단 1년밖에 재위를 못합니다. 북 왕국 요람 왕에게 병문안을 갔다가 그만 예후라는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는 와중에 같이 살해되고 말지요.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악녀 아달랴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아들이 황당하게 죽었는데 슬퍼해야 마땅하잖아요? 그런데 아들이 죽자 아들의 아들들, 자기 친손자들 아닙니까? 이 친손자들을 싹 다 죽여버려요. 왜? 권력욕, 자기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왕족의 씨를 다 말려버린 후 스스로 여왕으로 등극합니다. 끔찍하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달랴가 친손자들을 다 죽일 때, 요아스의 고모인 여호사브앗이 간난아이인 요아스를 몰래 숨겨 유일하게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여호사브앗은 자기 남편인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요아스를 6년 동안이나 성전에 숨겨둡니다. 6년 후, 제사장 여호야다는 결국 혁명을 일으켜 악녀 아달랴를 처단하고 7살 박이 어린 요아스가 유다의 8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것이죠.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2절 말씀 읽읍시다.

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이게 무슨 말 같습니까?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자기 생명을 구해주고 왕위에 오르게 해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말이에요. 그럼 이 말은 거꾸로 무슨 뜻이겠습니까?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됐다는 거에요? 잘못된 길로 갔다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의 지도(가이드)를 철저하게 따랐어요. 여호야다를 영적 스승(멘토)으로 삼고 항상 율법 말씀대로 살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성전에서 번제를 늘 드리는 등 제법 하나님 보시기에 왕 노릇 잘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15절 읽습니다.

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여호야다가 130세, 꽤 장수하다가 늙어서 죽었어요. 바로 그 다음부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요아스는 곧바로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17~18절입니다.

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여호야다가 죽으니 유다 방백(지도자)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며 아부를 하고, 왕은 그들의 꾀임에 넘어가서 성전을 버리고 온갖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는데도, 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시는데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들인 스가랴가 바른 말을 하자 성전 뜰 안에서 돌로 때려죽입니다. 그렇게 착하고 선한 왕이, 하나님만 섬기던 요아스가 순식간에 우상숭배자요 할머니 아달랴 버금가는 끔찍한 폭군으로 돌변한 것입니다. 왜요? 이유는 단 하나, “여호야다가 죽어서.”입니다. 결국 요아스는 아람 군대와 싸우다 패해서 부상을 입고, 그를 신하들이 침상에서 쳐 죽입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거지요.

 

❚ 누구를 의지하는가?

우리는 이 요아스 왕 이야기에서 너무도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까 설교 시작할 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을 믿을 수는 있지만, 사람을 의지하지는 마라.”고 했습니다. 왜요? 사람을 믿어주는 것은 좋지만 사람을 하나님 대신 의지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했어요.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누군가를 의지하기 시작하면 꼭 둘 중에 하나, 그 사람한테 배반당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없으면 나도 무너지고 마는 거에요.

물론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생명의 은인이고 영적인 스승이요 멘토였습니다. 7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요아스에게 여호야다는 너무 너무 귀한 존재였지요. 하지만 성경을 보면 요아스 왕은 하나님 대신 여호야다 제사장을 의지한 게 틀림없습니다. 왜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성장하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독립해서 내 길로 가야 하는데, 영원히 그 영향력에서 못 벗어나면 문제가 되거든요.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리 내가 낳은 내 자식이라도 때가 되면 독립시켜야 해요. 심리적으로도 독립시켜야 하고 제 힘으로 살도록 놔주는 것이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인데 이걸 끝까지 못 놓으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런데 요아스를 보세요.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잘 살던 왕이 여호야다가 죽자 말자 ‘곧바로’ 우상숭배자로 돌변하고, 폭군으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요아스는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게 아니라 여호야다 제사장을 믿고 의지한 겁니다. 여호야다가 믿던 하나님을 따르는 척은 했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런 것이고 결국, 요아스는 사람을 믿은 거고 사람을 의지한 거지요. 하나님 대신에요.

요아스 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나한테 여호야다 같은 존재가 있습니까? 나를 신앙적으로 잘 도와주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해주는 좋은 멘토, 좋은 가이드, 친구들 말입니다. 이런 분을 만났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귀한 만남의 복을 받기 바랍니다.

둘째, 하지만 그 사람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렇죠. 아무리 좋은 멘토나 친구도, 나를 도와주는 분도 언젠가는 나이 들어 죽든지 아니면 언젠가 때가 되면 나를 떠나게 됩니다. 사람이니까 절대 영원할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를 대비해서 독립할 준비를 해야지요. 나 혼자서도 예수 잘 믿고 바른 길로 갈 준비를 해야지요. 부모님에게서도 신앙적으로 독립해서 나 혼자 예수 잘 믿도록, 또 나의 좋은 벗이나 멘토에게서도 독립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살아갈 수 있게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누구나 언젠가는 이렇게 영적으로 독립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셋째, 그런데 항상 나 스스로에게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나는 혹시 하나님보다 이 사람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이 사람에게 더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걸 안 물으면 반드시 언젠가 그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아도 결코 영원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영원하신 하나님만 붙잡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믿고 의지할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뿐인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나는 하나님 외에 누군가를 붙잡고, 그 사람 믿고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그 사람이 믿음 안에서 만난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만난, 신앙 안에서 만난 너무나 좋은 분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목회자든, 같은 교회 성도나 좋은 신앙의 벗이든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를지라도 만에 하나, 내가 하나님 대신 그를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가 사라지는 순간, 그가 나를 실망시키는 순간 우리도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 설교 듣기 위해 오신 분은 가셔도 되겠습니다.

한 가지만 여러분께 질문을 더 드리겠습니다. “나의 여호야다는 누구입니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묻자면 “내가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여호야다는 누구입니까?”

간혹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목사님 설교 들으러 교회 옵니다.”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나 감사해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순간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저 분은 내가 설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오해는 마세요. 설교 듣고 나서 은혜 받으면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렇게 인사하고 표현해주시면 설교하는 목사들은 정말 힘이 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목사님 설교 들으러 교회 옵니다.”는 아닙니다. 제가 아는 다른 교회 성도 중에 “우리 교회 목사님, 너무나 훌륭한 목회자고 설교가신데, 저는 그 분 은퇴하면, 그 분 돌아가시면, 그 교회 안 나갑니다. 다른 교회 갑니다.”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에요. “누구, 누구 얼굴 보려고 교회 옵니다.”도 아닙니다. 아무리 그분과 친하고 그분이 좋아도 이건 아닙니다. “나는 내가 맡은 책임 때문에 교회 옵니다. 내가 부장이고 대장이고 팀장이라서 그 책임 때문에 교회 옵니다.”도 아닙니다. “저는 제가 맡은 직분, 장로, 집사, 권사 직분 때문에 교회 옵니다.”도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 너무 좋아서 옵니다. 교회학교가 잘 되어 있어서, 시설이 좋아서 옵니다. 교회 분위기가 좋아서 옵니다.”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만나러 교회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보고 교회 와야 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러 오셔야 하고, 하나님 대신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유명한 일화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180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목회했던 헨리 워드 비쳐(Herry Ward Beecher, 1813~1887) 목사님은 참 유명한 설교가였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시간 한참 전에 와서 기다리다가 예배당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저한테는 참 부러운 분이에요. 저는 언제 그럴 수 있을지... 비쳐 목사님은 당시 미국의 노예제도의 부당성과 그에 따른 인간의 죄성에 대해 설교하며 회개와 사회정의를 외친 용감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날도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예배당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쳐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목사님 한 분이 강단에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오늘 비쳐 목사님 설교하는 줄 알고 왔는데 이게 뭐야?” 수군거리고, 이미 몇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강단에 오른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오늘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이 아프셔서 부득불 예배에 나올 수 없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대신 설교단에 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목사님이 오늘 설교 시작하기 전에 특별 광고를 하나 하겠다는 거에요. 그 특별 광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금 자리를 뜨시고 계시는 분들 말고도 혹시 이곳에 헨리 워드 비쳐 목사님을 예배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계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나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오신 분들은 예배 순서 순서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이내 교회당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그날의 예배에는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넘쳤다고 합니다.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탁월한 설교자가 되어,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려고 와서 기다린다? 이건 설교자라면 누구나 부러운 일입니다. 저도 너무 부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탁월한 설교자는 못 될망정, 결코 제 설교 때문에 교회 오는 분들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저는 설교 열심히 할 겁니다.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설교해서 정말 좋은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설교는 이하준 목사의 설교가 아닙니다. 이하준 목사의 말도 아닙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저는 더 이상 설교자가 아니라 강연자요 연설자에 불과한 겁니다. 오늘의 설교 속에 저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뜻만 나타나야 합니다. 저는 탁월한 설교자는 못 되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누구에게 예배하러 오셨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를 만나러 오셨고, 누구의 말을 들으러 오셨습니까?” 만일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만 예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있다면 여기 남으시고 다른 사람에게 예배하러 오신 분은 지금 나가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중에 오늘 하나님을 만나러 오신 분, 하나님 말씀 들으러 오신 분이 있다면 여기 남으시고, 사람 만나러 오신 분, 사람 말 들으러 오신 분이 있다면 지금 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이 어렵고 힘든 세상, 예배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모든 환경이 너무 힘든 시절인데도, 그래도 오늘 여기 나오신 분들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러, 하나님을 만나러 오신 분들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소망대로 오늘 꼭 하나님 만나고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그분께만 예배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만이, 하나님이 오늘 이 자리에 하늘의 문을 열고 임재하셔서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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