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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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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변화의 시작점
  • 설교일2021-12-26
  • 성경본문로마서 12:1~2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87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변화(change)

오늘은 송년주일입니다. 올해 2021년의 마지막 주일이지요. 이제 닷새만 지나면 2021년은 저물게 됩니다. 송년(送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보낼 송(送), 묵은 한 해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송년이라는 말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보낼 건 보내고, 잊을 건 잊고, 떠나보낼 건 떠나보낸다.

네, 보낼 건 보내야 합니다. 잊을 건 잊고 떠나보낼 것은 과감하게 떠나보내야 합니다. 특히 올 한 해 힘들었던 기억, 안 좋은 기억은 다 보내고 잊고 털어버립시다. 또한 송년이라는 말에는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로 새해를 맞이한다.

지난 한 해 안 좋은 일들, 힘들었던 기억일랑 다 잊고 떠나보내고, 나아가 새로 맞이하는 새해에 변화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제는 변화가 좀 필요합니다. 왜? 지금 이대로는 안 되니까요. 이대로 코로나의 고통 속에 눌려 살 수도 없고, 이대로 경제적 재정적 빈곤함에 시달릴 수도 없고, 이대로 몸과 마음이 아프고 지쳐서 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온갖 문제들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 지도자도 바꿔보자고 하고, 힘든 현실도 다 바꿔보자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이 말, “못 살겠다, 바꿔보자!”는 말,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혹시 이 말이 언제 나온 말인지 아십니까? 1956년, 제3대 대통령 부통령 선거 때 민주당이 자유당 정권에 맞서 내건 선거 구호가 바로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습니다. 당시 정권의 무능과 부패 때문에 이 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계속 이 말, “못살겠다, 갈아보자! 못살겠다, 바꿔보자!”를 외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로부터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과연 정말 바뀐 게 있습니까? 정치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수많은 것들을 바꾸자고 그렇게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싸워왔지만 실제로 바뀐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 긴 세월동안 여전히 후진적인 정치수준도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이고, 이 사회와 우리 삶 전체가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요? 왜 그렇게 갈아엎어보자고, 바꿔보자고 몸부림을 치는데 바뀐 게 없는 걸까요?

오늘은 송년예배를 맞아 우리 삶에 변화가 왜 일어나지 않는가? 그토록 갈망하고 노력하건만 왜 변화가 생기지 않는 걸까? 그 원인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새해에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는 변화가 일어날 테니 말입니다.

 

❚ 변화가 안 일어나는 원인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로마서 12:1~2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말씀이지요. 성서학자들은 이 로마서 12:1~2 말씀을 이렇게 부릅니다. ‘로마서의 분수령’. 왜냐하면 전체 열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거든요. 로마서 1~11장은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12~16장까지는 윤리를 다룹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복음, 즉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의 교리를 다룬 후 로마서 12장에 이르러 윤리, 즉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는데, 바로 복음에서 윤리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되는 말씀이 로마서 12:1~2인 것입니다.

자, 좀 쉽게 설명해 봅시다.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았어요. 다른 어떤 공로나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아멘이지요? 그럼 믿음으로 구원받기만 하면 끝이냐? 아니라는 거에요. 이제 윤리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삶의 문제가 남은 거에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답게, 성도답게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온전히 구원받은 성도가 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그 분수령이 되는 로마서 12:1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의 뭘 드려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무슨 뜻일까요? 예배 와서 헌금과 제물만 드리지 말고 내 몸을,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나 믿어서 구원 받았소, 말로만 하지 말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라는 겁니다. 2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죄 많고 더러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 물어봅시다. 변화는 누구한테서부터 일어나야 한다는 거에요? 누가 제일 먼저 변해야 내 주변에 변화가 일어나고 세상에 변화가 일어난다? 네, 바로 나입니다. 나부터 변해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자, 아까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나길 그토록 갈망하고 노력하는데 왜 아무런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걸까? 내 주변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고 이 세상이 변하기를 그토록 원하는데 왜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가? 누구 때문이라는 거에요? 예, 나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뭡니까? <변화의 시작점>이요.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변화의 시작점은 어디입니까? 진정으로 변화의 출발점은 누구부터라는 겁니까? 바로 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안 변하니까, 나부터 변화가 없으니까 내 삶에도 아무런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란 말입니다. 나부터 변해야 네가 변하고, 내가 먼저 변해야 내 주변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데 내가 안 변하니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거라 이겁니다.

신기하게도 세상 사람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더군요.

요즘 TV에서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자녀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보시나요? 여기에는 각종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별별 문제가 있는 애들이 다 나와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상담을 맡은 오은영 박사는 늘 뭐라고 결론을 냅니까? 결국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거에요.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애들이 바뀐다, 이게 늘 결론이에요.

요즘 TV에 애완견을 다룬 프로그램도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뭡니까? 개는 죄가 없다는 거에요. 주인이 문제지. 주인은 그저 개가 내 말을 안 듣는다,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이면 열, 전문가들은 모두 개가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도 다 안다는 겁니다. 상식으로요. 평범한 상식만 가지고도 애가 먼저 변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개가 변하려면 주인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오히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아니,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듭니다. 그래서 내 삶에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란 말입니다. 조정민 목사님의 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를 바꾸겠다며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를 바꾸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 진정

바꾸어야 할 사람이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거 다 내려놓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교회를 바꾸어 놓겠다며, 아내를 바꾸고 자식을 바꾸고 가정을 바꾸겠다며 아등바등 거리던 제가 “왜 저 사람들, 저렇게 안 바뀌지? 왜 세상이 이렇게 안 바뀌지.” 했는데 결국 진짜 바뀌어야 할 사람은 나임을 깨달은 거지요. 조 목사님은 나이 쉰에야 겨우 깨달았다는데 저는 나이 60이 다 되도록 이걸 잘 깨닫지 못한 겁니다. 아니, 머리로는 알았겠지요.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데요. 이론으로는 알고 머리로는 알지만 그걸 인정하고 진정 나부터 변화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부끄러워진 겁니다.

 

❚ 변화의 시작점

오늘 본문 로마서 12:2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11장까지 복음을 이야기, 믿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당연히 믿음이 좋아야지요. 교회 다니다보니 믿음이 생겼고, 오래 다니다보니 이제 제법 예수 믿는 사람 티가 납니다. 언어에도, 표정에도, 삶의 방식에도 제법 예수 오래 믿은 테가 나고 예수장이 냄새가 납니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예수장이인 것 다 알고, 교회에서도 제법 인정을 받아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12장부터 윤리의 문제로, 삶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나는 과연 예수 제대로 믿는 사람답게 사는가? 내 삶은, 그리고 내 주변은 예수 믿는 나로 말미암아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누구부터 변해야 한다고요?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너희부터, 너부터” 이 세대를, 이 시대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본받지 말고 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사람이 돼라! 나부터 변화되어 내 삶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다사다난(多事多難), 사건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던 올 한해였습니다. 2021년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새로 밝아오는 2022년 새해는 좀 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진짜 우리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제발 좀 어려운 일, 힘든 일 싹 다 물러가고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습니다. 모든 상황이 더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세상도 변하고 사회도 좀 변하고, 정치도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또 우리 가정도 변하고 가족들도 다 변하고, 우리 교회도 변하고 성도들도 변하면 너무 좋겠다, 이런 새해 소망을 품어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려면? 나부터 변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먼저 안 변하면 가족도 절대 안 변한다. 교회도 성도도 안 변하고 세상도 안 변한다. 그러니 나부터 변해야 한다. 그러면 나부터 변화의 시작점이 되어 내 주변이 다 변하고, 내 삶이 온전히 변하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온누리교회를 사역했던 고(故) 하용조 목사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글입니다.

언젠가 선교사님들의 사역과 삶에 대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파송된 70세 넘으신 장로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워낙 사역을 오래 하셨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거라고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일흔이 넘었습니다. 선교사로 주님의 일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저의 못난 성격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화를 잘 냅니다.”

그분이 말씀을 하시다가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분노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제가 무슨 선교사 자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다 부끄러워졌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느냐’보다 ‘내면의 삶이 주님을 닮았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다가 무척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이 장로님은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는데, 저도 58년 동안이나 살면서 고치지 못한, 변화되지 못한 저의 성질머리가 있습니다. 변하지 못한 저의 모난 성품이 있고 잘못된 습관이 아직도 많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들입니다. 저의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못 고친 겁니다. 제가 별로 고치려는 의지가 없었나 봅니다.

이유가 뭘까? 어쩌면 저 자신이 제 성질이나 성품이나 습관 그대로 가지고 사는 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나 봅니다. 내가 안 불편하니 고치려고 들지 않은 거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를 미처 몰랐습니다. 나는 내 성질, 성품, 습관이 안 불편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몹시 불편하셨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 성질머리와 성품과 습관, 내 생겨먹은 그대로 둔 채로 이 선교사님처럼 사역을 하고, 목회를 하고, 주의 일을 하면서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저를 하나님 일에 쓰실 때 몹시 불편하셨던 겁니다. 그걸 제가 모르고 지금까지 지내온 거지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바꿀 거 없습니까? 뭐 이 정도면 됐고, 나 살아가는 데 지장 없겠습니까? 이만하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다 싶습니까? 그래서 그냥 이대로 살고, 이대로 믿으시렵니까? 아니요. 내 기준과 내 입장에서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내 이게 하나님 보실 때 불편하시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고치십시오.

“목사님! 내 나이가 몇인데 지금 그걸 고칩니까?” 이러실 분도 있을지 몰라요. 아닙니다. 거꾸로 생각하셔야 해요. 내 나이가 몇인데, 어쩌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예수 오래 믿으면서도 어쩜 그거 하나 못 고치고, 그렇게도 변화되지 못하고 살았나? 나는 하나도 안 바뀌면서 세상보고 변하라고 요구하고, 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아내와 남편에게, 자식과 가족들에게 변하라고 하면서 살았나? 내가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고 믿어온 시간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그때부터 나에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내가 변하면 내 주변사람이 다 변하고 세상이 다 변합니다.

오늘 2021년을 보내는 송년주일, 이 깨달음을 지금이라도 얻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를 다듬어 주시고 나부터 변화되게 하옵소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2022년 새해는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 삶에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희망의 새해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를 변화의 시작점 삼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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