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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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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당신과 나 사이에
  • 설교일2021-11-28
  • 성경본문사무엘상 20:20~23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76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 아름다운 간격

제게 이런 상담을 해온 분이 계셨습니다. “목사님, 왜 저하고 남편은 맨날 싸울까요? 우리 부부 다 교회 잘 다니고, 저나 남편이나 그렇게 성질이 못되거나 막 되먹은 사람들도 아닌데 우린 왜 밤낮 싸우기만 할까요?”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저도 싸워요. 목사도 부부싸움 한답니다. 부부가 싸울 수도 있지요. 괜찮아요.” 그랬더니 이분이 상당히 위로가 되는가 봐요. 목사도 부부싸움 한다니까요. 목사는 평생 부부싸움 한 번도 안 하고 사는 줄 아셨나보죠?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이 부부는 좀 심각합니다. 매일 안 싸우는 날이 없고 싸우면 험악한 말과 행동도 나오고 그러나 봅니다.

듣고 보니 두 사람의 성격이 부딪치는 겁니다. 두 사람 성격이 너무 똑같아요. 둘 다 너무 강한 성격이에요. 그러니까 자꾸 부딪치는 거지요. 여러분, 부부가 성격이 똑같으면 잘 살 것 같지요?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부부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라는데 말도 안 돼요. 부부는 성격이 달라야 살아요. 두 사람 성격이 똑같으면 오히려 자꾸 서로 부딪치고 힘들어집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부쩍 무릎 연골수술을 받는 분이 많습니다. 평생 쓰니까 닳아서 고장이 난 거지요. 그런데 연골이 하는 일이 뭐냐? 쉽게 말하면 쿠션처럼 체중에서 오는 충격을 완화시켜주고, 뼈와 뼈가 직접 부딪치지 않게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연골이 닳거나 파열되면 뼈와 뼈가 직접 닿아 너무 아픈 거에요. 그렇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이 연골처럼 완충 역할을 해줄 뭔가가 필요합니다. 부부상담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 완충역할, 서로 직접 부딪치지 않게 중간에 쿠션역할을 해줄 뭔가가 필요한데 부부간의 대화가 중요하다. 같은 취미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다. 좋은 추억을 같이 만들고 공유해라 등등... 때로는 자녀들이 엄마 아빠 사이에 완충역할을 해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걸로는 안 됩니다. 대화도, 취미도, 추억도, 자녀도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부부 사이에 직접 부딪치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뭔가 부부 사이에도 아주 분명한 완충지대가 필요합니다. 부부 사이에 연골처럼 딱 자리 잡아서 부부가 직접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완충시켜줄 무엇인가가 꼭 필요합니다. 그게 뭘까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 시인이며 철학자인데 그의 시, 제목이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이라는 시에 보면 참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시의 첫 부분만 소개하지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멋진 시에요. 결혼식 때 축시로 읽어주기도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이 서로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부부가 되지만 너무 두 사람만 너무 딱 붙어서, 그러다보니 서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구속하지 말라는 겁니다. 두 사람 사이에 하늘 바람이 춤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바다가 출렁일 자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는 이 시를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맞다, 부부 사이도 일정한 간격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 간격은 두 사람 사이에 의견차나 갈등이 있을 때 완충시켜주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해주며, 결과적으로 두 사람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면 그 공간을 텅 빈 채 비워둬야 하는가? 아니요. 비워두면 오히려 문제가 생겨요. 부부 사이가 공허하고 허무해집니다. 그 빈 공간, 그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채워줄 그 뭔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무릎연골처럼 세월이 흐르면 닳아 없어져서는 안 됩니다. 세월 따라 변하고 환경 따라 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서로 직접 부딪치지 않게 해주고, 두 사람 사이를 잘 연결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뭘까요?

 

❚ 당신과 나 사이에

자, 오늘 설교제목이 뭡니까? <당신과 나 사이에>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하면 바로 “저 바다가 없었다면” 하고 나오는 분은 구세대 중의 구세대입니다. 1967년 남진 ‘장로님’이 부른 노래니까요. 그 당신과 나 사이 말고, 오늘은 성경이 말씀하는 당신과 나 사이, 즉 부부 사이, 부부뿐 아니라 부모 자녀, 우리 가족 사이, 친구 사이, 성도들 사이,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사무엘상 20장에는 두 친구가 등장합니다.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최고의 친구, 다윗과 요나단이지요. 얼마 전에도 다윗과 요나단 친구 사이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다시 읽다가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번 읽는 게 아니라 몇 십 번이고 계속 읽어야 하는 거에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깨닫고, 샘물처럼 새로운 은혜가 솟아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얼마 전 설교를 하면서 이 본문을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것, 발견하지 못한 은혜를 이번에 다시 읽으며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게 뭐냐? 바로 사무엘상 20:23 말씀이에요.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여러분! 다윗과 요나단, 이렇게 좋은 친구 사이에도 반드시 이 말씀처럼 그 둘 사이에 누가?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우정이 가능했다라는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아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 두 사람 사이에, 모든 ‘당신과 나 사이’에,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구나!

다윗과 요나단이 아무리 좋은 친구 사이였다 해도, 두 사람 사이에 욕심(왕위에 대한 욕심), 경쟁(나를 제치고 왕이 될 놈이다), 이득과 손해 등 인간적인 동기가 끼어들었다면 이 우정은 불가능했습니다. 오히려 저 친구를 제거해야, 저 놈을 죽여야 내가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불행한 경쟁관계가 되고 말지요. 두 사람 사이가 직접 부딪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일찍이 둘 사이에 직접 부딪치지 않도록 공간을, 간격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격에 누가 계시게 했다? 네,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게 한 겁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동기를 뛰어넘은 진정한 친구로 보고 자기 목숨을 걸고 아버지 사울의 손아귀로부터 친구 다윗을 구해주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친구 다윗에게 “아버지를 피해 잠시 숨어있어라, 너 없는 사이에 내가 아버지의 의중을 떠봐서 아버지가 너를 살리려고 하시면 화살을 쏘고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와라.’ 하고 신호를 보낼게. 그럼 돌아와라. 하지만 아이에게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고 말하면 그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진짜 죽이려고 한다는 신호니 빨리 도망가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말이 뭐냐?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입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 둘 사이의 약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히 계신다! 고로 나는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킬 거다. 너도 약속을 꼭 지켜라. 이런 뜻이죠.

결론적으로 친구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계셔서 진정한 우정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요즘 새벽본문인 욥기에서 욥과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실 틈이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공간이 없이, 아무리 친구라지만 자기네끼리 직접 부딪쳐 해결하려 들다가 논쟁을 하고(오직 자기주장만 펴면서), 충고하고 교정하려고 들고, 욥은 오직 자기변명만 하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증거가 있어요.

제가 새벽설교 때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욥기를 읽어보면 37장까지는 하나님이 한 번도 말씀 안 하신다고요. 욥과 세 친구, 나중에 엘리후라는 친구까지 등장해서 자기네들끼리 치열하게 논쟁하고 말로 싸우는 동안 하나님은 아예 침묵하시다가 38장에 가서여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욥기를 읽으면서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물론 38장이 되도록 일부러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말씀 안 하신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욥과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직접 부딪치고 해결하려 들며 하나님이 그들 사이에 끼어드실 틈을 조금도 안 드린 것일 수도 있다. 욥과 친구들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공간이 조금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같은 친구 사이지만 다윗과 요나단 사이와의 결정적인 차이지요.

다윗과 요나단은 비록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얼마든지 갈등하고 경쟁하고 서로 죽이려 들 수 있는 관계였지만 둘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 간격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도록 해서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영원히 최고의 친구로 남을 수 있었는데, 욥과 친구들은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실 틈이 전혀 없이 직접 부딪치고, 갈등하고, 논쟁하며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거란 말입니다.

친구 욥에게 환난이 연달아 닥쳐오고 견디다 못한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때, 절대 엘리바스, 빌닷, 소발, 이 세 친구가 자기네가 직접 개입해 욥을 꾸짖고 충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았어야 해요. 오히려 욥과 자기들 사이에 하나님을 모시고, 너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하나님이 계실 공간을 내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해결하시도록 했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그들은 실패한 거지요.

 

❚ 누가 계셔야 하나?

이제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저한테 상담했던 그 성도님, 왜 우리 부부는 맨날 이렇게 부부싸움만 하는지 모르겠다던 그분께 제가 뭐라고 얘기해주면 좋을까요? 물론 “목사인 저도 부부싸움 합니다.” 이 말이 조금은 그 분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진정한 해답은 뭘까요? 일단 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문제는 무슨? 대충 넘어가지 말고) 그 다음엔 그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분명하냐? 이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해결의 방법이 뭐냐가 중요하지요. 오늘 말씀이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어디 부부뿐이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당신과 나 사이, 모든 인간관계가 다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당신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가 관계의 핵심이라는 겁니다. 너와 나 사이에 돈이 있느냐? 내 욕심이 있느냐? 철저하게 나 자신만 있느냐?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 외에 그 무엇이 있든 진정한 관계를 방해하는 원인이 됩니다.

여러분은 친구가 있으십니까? 진정한 친구라 자부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친구와 나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당하는 사이, 제일 많이 속고 배신당하는 사이가 친구입니다. 왜 그럴까요? 친구 사이에 ‘돈’이 있고, 친구 사이에 ‘욕심’이 있고, 친구 사이에 ‘나’(자아)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 남편과 아내 사이에 누가 있습니까? 혹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친밀감’이라는 명목으로 부부 사이가 너무 꼭 붙어있어서, 그러다가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고 너무 편해서 무시하거나, 그 어떤 간격도 공간도 그 사이에 두지 않아서 직접 부딪치지는 않습니까? 부부 사이에 마음이 상하고 말이 거칠어지고 싸움으로 번지겠다 싶으면 차라리 대화나 논쟁을 바로 중단하고 서로 떨어져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 잠시의 시간도 부부 사이의 적절한 간격입니다.

혹 우리 부부 사이에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돈이나, 세상의 것, 나 자신이나, 내 고집만 존재한다면 그 관계는 몹시 힘들어질 겁니다.

내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합니까? 혹시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하나님이 안 계시고 내 생각이나 고집, 주장, 혹은 내 이득만 존재한다면? 요즘 어쩌다 부모가 자녀를 때리고 죽이며,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하나님 대신 다른 게 꽉꽉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부모노릇, 자식노릇이라는 기능적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식이 자식노릇 제대로 못한다, 내 자식이 내 맘에 안 들면 내 맘대로 다뤄도 되고, 거꾸로 부모가 부모노릇 제대로 못한다, 내 맘에 안 들면 함부로 해도 된다는 착각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그 관계는 힘들어집니다. 모든 가족관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와 성도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합니까?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합니까? 혹시 하나님이 계실 틈이 조금도 없는 것 아닙니까? 말로는 교회 다니고 주님 안에서 산다지만 실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상대방을 대하나요?

이렇게 모든 인간관계, 모든 ‘당신과 나’ 사이에는 반드시 일정한 공간과 간격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에는 반드시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두면 안 됩니다. 힘들어집니다. 반드시 우리 하나님만 영원히 그곳에 자리 잡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혹시 저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힘든 일이 생긴다면 절대 먼저 나하고 저 사람 당사자가 직접 해결하려 들지 말고, 절대 직접 부딪치거나 긁지 말고, 둘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을 찾으세요. 그분께 의뢰하세요. 그분께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를 중재하시고 풀어주십니다. 기억하세요! 당신과 나 사이에,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 사이에 우리 하나님이 계셔서 마음껏 춤추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관계가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 제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은 없고 ‘나’만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지금 불편한 저 사람과 내 관계가 잘 해결되고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같은 아름다운 관계만 존재하게 하소서! 오직 주님만 우리 사이에 계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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