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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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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알고도
  • 설교일2021-10-31
  • 성경본문다니엘서 6:10~12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65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 다니엘과 사자 굴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성도들의 수준(예술적 안목)을 좀 높여보기 위해 잠시 명화감상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거장인 루벤스(Pi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작품입니다(사진1). 이 그림을 보면 딱 떠오르는 게 뭡니까? 네, 그렇죠. 바로 다니엘(과 사자 굴)입니다. 이 명화의 제목이 바로 사자 굴 속의 다니엘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기드온?” 하고 물으면 바로 “300용사” 하고 나오는 것처럼 “다니엘?” 하면 바로 “사자 굴”이 떠오르는 다니엘서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인 다니엘서 6장에 나오는 사자굴 사건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다니엘과 사자 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교회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은 얘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이야기와 더불어 성경동화로도 제일 잘 알려진 사건이니까요. 이 사건의 결말이 뭡니까? 원수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사자 굴에 집어넣었지만 하나님이 다니엘을 지켜주셨고 오히려 원수들이 다 사자 굴에 던져져 죽임을 당했다. 다 아는 내용 아닙니까? 오늘 본문 22절에 나오는 사건의 당사자, 다니엘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도록 합시다.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이 말씀을 보니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제가 했던 유년부 설교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스물다섯, 너무도 젊은 교육전도사였는데 이 다니엘과 사자 굴 이야기를 초등학교 1,2학년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 이런 시청각자료를 사용했습니다(사진2). 그러면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이렇게 입 벌리고 달려드는 사자들의 입을(밴드를 붙임) 봉해주셨어요.”하고 설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와 반응이 너무 다르네요.

오늘 우리는 이렇게 너무 잘 아는 이야기, 다니엘과 사자 굴 사건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잘 아는 사자 굴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그 원인, 어쩌다가 다니엘이 그 무시무시한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이유를 알아보려고 해요. 그 원인이 뭐냐? 어쩌다가 대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수석 총리 자리까지 오른 다니엘이 사자 굴까지 들어가게 됐을까? 그 이유는 바로 오늘 설교제목, 뭡니까? <알고도>, 이 “알고도”라는 세 글자로 요약됩니다. <알고도>는 “다 알면서”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다 알면서도,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될 줄 알고도 들어간 것이라 이겁니다.


❚ 알고도

이 “알고도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국이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 메대의 다리오 왕, 그리고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세 나라의 네 명의 왕에게 중용되며 점점 지위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주신 지혜로 온갖 꿈과 환상을 해석해서 그 자리까지 오르게 된 거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인 다니엘서 6장에 이르러 다니엘의 지위가 최고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메대의 다리오 왕은 대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120명의 고관(지방장관)을 세우고 그들 위에 세 명의 총리(우리나라로 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를 두어 전국을 다스리게 하는데 다니엘이 그 세 명의 총리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 셋 중에서도 워낙 뛰어난 거에요.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여기서 “민첩하다”는 말은 “뛰어나다” 마치 군계일학(群鷄一鶴), 닭들 사이의 한 마리 학처럼, 확 구분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군계일학 수준으로 뛰어나서 왕은 그를 세 총리 중 가장 높은 수석총리로 세웁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온 주제에 그렇게 출세하니 어찌 배 아픈 자가 없겠어요? 총리와 고관들은 시기심에 불타 어떻게 하면 저 미운털 박힌 다니엘 놈을 제거할까 모의하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다니엘은 그들에게 그 어떤 고발거리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이 워낙 충성되고 어떤 실수도 허물도 없어서 고발할 거리가 아예 없었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모두 다니엘처럼 되기를 축복합니다! 특히 우리 자녀와 자녀손이 다니엘처럼 되기를 축복합니다! 완벽한 사람 되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늘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한 결 같이 충성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 그러면 원수들도 우리를 시비 걸거나 넘어뜨릴 수 없어요. 여러분과 자녀손이 학교를 다니든, 직장생활을 하든, 군대에 가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니엘 같은 존재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원수들은 또 다른 계략을 꾸밉니다. 다리오 왕한테 살살 아부하면서 “왕께서는 신과 같은 존재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읍시다.” 이런 금령(=어명)을 내리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이 법을 몰랐을까요? 최고 대신, 영의정인 다니엘이 이 법을 몰랐을 리 없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바로 이 때 등장한 말이 “알고도”입니다. 10절 말씀 읽읍시다.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이 금령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즉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가서도 “전에 하는 대로” 매일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사자 굴에 들어가 찢겨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기도를 드린 겁니다. 저 같으면 “하나님 30일만 참아주세요. 그 다음에 기도할께요. 저도 살아야지요.” 하고 살짝 피해갈 텐데 다니엘은 우직하게 늘 하던 대로 기도합니다. 그럼 결과가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죽는 거지요. 그걸 “알고도” 다니엘이 그렇게 했다, 바로 여기에 오늘 사자 굴 사건의 핵심이 있다 이겁니다.

대한민국 형법에 보면 범죄의 고의성 여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고의성이 있거나 계획적인 범죄면 살인죄가 적용됩니다. 그런데 같은 살인이라도 계획성이나 고의성이 없다, 실수로 그렇게 됐다 하면 이건 과실치사가 됩니다. 형량이 엄청나게 차이 나지요. 경찰은 고의성을 입증하려고 애를 쓰고, 변호사는 어떻게든지 고의성이 없음을 입증해서 형량을 줄여보려고 합니다. 치열한 법정싸움이 벌어지는 거지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렇게 고의성을 부인하려 애쓰는데 지금 다니엘은 뭡니까? 남들은 어떻게든 고의성이 없다고, 알고 그런 게 아니라 모르고 그랬다고 주장하는데 다니엘은 거꾸로 갑니다. 알고도, 다 알면서도, 완전 고의적으로 그 길을 간 겁니다. 죽을 줄 알고도,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도 일부러 그 길을 간 겁니다. 왜? 그 길이 하나님의 길이니까. 그 어떤 이유로도 내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할 수 없으니까. 내가 어떤 손해를 본다 해도, 심지어 내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 섬기고 따르는 길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그야말로 목에 당장 칼이 들어와도, 죽었다 깨도 “나는 오직 하나님만 믿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다니엘이 “알고도” 고의적으로 그 길을 간 겁니다. 이게 바로 “사자 굴 사건”의 핵심입니다.


❚ 죽으면 죽으리이다!

오늘은 종교개혁 50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부속 교회당 정문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사진3)가 95개 조항의 반박문(대자보)을 붙입니다. 가톨릭 사제요 신학교수였던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절대진리를 가톨릭 교회가 어기고, 특히 돈을 받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는 철저하게 비성경적인 제도임을 용감하게 95개 조항으로 알린 것입니다.

그런데 일개 신부요 교수인 루터가 이런 반박문을 붙이고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데 그 서슬 퍼런 로마 교황청이, 당시 중세시대의 모든 세속권력 위에 군림하던 절대권력 교황이 가만있었겠습니까?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신성로마제국에서 추방당하고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루터의 추종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종교개혁의 바람이 급속히 불자 다급해진 교황은 세속권력의 대표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도움을 청했고 황제는 1521년 1월 27일 독일 보름스(Worms)에서 국회를 열어 루터를 소환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정감사를 연 거에요. 황제는 소환장을 보내면서 루터에게 통행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에게 절대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너 가면 죽는다.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지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황제가 교황 편인데 가면 종교재판을 받아 유죄를 받고 화형 될지 모른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 루터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보름스 국회 지붕 위의 기왓장만큼 마귀가 많다고 해도 나는 그곳에 가겠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고 소환에 응해 황제 앞에 당당히 섭니다. 루터가 보름스 국회에 서자 자신의 주장을 취소하라고 엄청난 강요를 당하지요. 하지만 끝내 루터는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를 거절합니다. 루터는 자신의 주장이 절대 나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철회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다니엘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바로 오늘 설교제목 그대로 <알고도>입니다.

다니엘은 늘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면 죽을 줄 알고도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것이 신앙 양심이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진리였기 때문에, 비록 사자가 나를 찢어 죽이려고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루터도 보름스 국회에 가면 협박을 당하고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곳에 갑니다. 보름스 국회 지붕 기왓장만큼 많은 마귀 떼가 달려들 줄 알고도 갑니다.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려는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성경의 진리를 선언하고 내 신앙의 양심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때, 보름스 국회에 소환되어 갈 때 루터가 만든 찬송가가 오늘 설교 후 부를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입니다.  가사를 보면 비록 가톨릭과 교황과 황제 권력이 연합해 나를 굴복시키려 해도 하나님이 강한 성이 되어 나를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나를 화형 시킨다고 덤벼들어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온 찬송이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고 특별히 오늘 세례와 입교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신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결국 다니엘이 이겼나요? 다니엘을 죽이려던 원수들이 이겼나요? 결국 사자 굴에 던져져 비참하게 죽은 건 누굽니까? 분명히 아시죠?

자, 그럼 또 묻습니다. 루터가 이겼을까요? 루터를 입 다물게 하려던 교황청과 세속권력이 이겼을까요? 루터가 졌다면 지금 우리는 이곳 대한예수교장로회 효자교회 예배당에서 예배하고 있을 수 없어요. 저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고 있어야지요.

하나님은 지금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루터 같은 사람, 다니엘 같은 사람입니다. 알고도 그 길을 가는 사람, 그 길로 가면 손해 볼 줄 알고도 신앙의 양심대로 그 길을 기꺼이 갈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 말입니다. “그래, 나 다 알아! 손해보고 왕따 당하고 힘들어질 줄 다 알아! 사자 굴에 던져질 수도 있다는 거 알아! 그런데 이 길이 진리의 길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길인데 어떻게 하겠어?” 하면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선언한 것처럼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알고도 손해 볼 사람, 알고도 이 길을 기꺼이 갈 사람을 찾으십니다. 왜? 바로 그런 극소수의 사람들, 그 바보 같은 사람들(알고도 손해 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지요.)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켜 가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바로 이런 소수의 바보 같은 사람들이 써간 것이고, 오늘날 기독교가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신앙의 역사를 꿋꿋이 지켜 갈 사람들은 바로 이런 소수의 알고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런 사람, 다니엘처럼, 루터처럼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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