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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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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마음
  • 설교일2020-05-03
  • 성경본문누가복음 18:15~17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90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어린이날, 어린이주일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지키는 이 어린이주일이 올해는 왠지 유난히도 쓸쓸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그건 당연히 오늘의 주인공이어야 할 어린이들이 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 효자교회는 지난 2013년부터 어린이주일에는 3부예배 때 모든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고 유아세례식도 거행해 왔습니다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들이 교회에 올 수도 없고, 교회학교도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느 해 같으면 오늘 이 자리가 어린이들로 북적대로 요란한 가운데 함께 예배를 드릴 텐데 아이들이 없으니 너무도 이 자리가 적막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하네요. 허전~합니다.

사실 우리 효자교회는 정말 축복받은 교회에요. 젊은 성도들이 줄고 아이들이 줄고 교회학교가 급감하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우리 효자교회는 30~40대 젊은 성도들도 참 많고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어린이주일에 아이들과 함께 예배할 때 좀 애들이 떠들고 때로는 울고불고 해도 너무 행복한 거에요. 주일 점심에 식당 올라가서 밥 먹을 때 제 뒷자리가 주로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이 앉는 자리거든요? 제 뒤에서 아이들 떠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울고불고 하면 저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아휴~ 애들 정말 시끄럽네. 정신 하나도 없네.” 하고 생각하다가 “아니, 그게 아니지. 이렇게 떠들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완전히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다른 교회 설교하러 가보면 정말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는 교회가 제법 많습니다. 어른들과 연세가 지긋한 성도님들만 보이고 젊은 성도도 없고 아이들은 온데간데없는 그런 교회가 너무 많아요. 그런 교회 가보면 예배당이 정말 고~요합니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그렇게 조용한 교회 가보면 제가 행복했을까요? “야, 예배시간에 정말 조용하고 좋네.” 했을까요? 아니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 교회가 미래가 없구나 싶어 너무 안타까운 겁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 와서 아이들 떠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울고불고 하면 전 너무 행복한 거에요.

그런데 오늘은 그 아이들이, 저를 행복하게 하던 아이들이 이 자리에 없네요. 어린이주일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돌아올 겁니다. 이제 조금씩 코로나 상황도 안정이 되고 예배도 정상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곧 완전히 정상화 될 것입니다. 그때 교회학교가 정상화 되고, 아이들이 돌아오고, 그 아이들이 예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떠들고 울고불고 하는 행복한 날이 곧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가정에서 예배하는 부모님들 중에 정말 교회 오고 싶은데, 교회 예배를 너무 사모하는데, 어린 자녀들 건강 때문에 교회 못 오고 할 수 없이 가정에서 예배하는 분도 있을 거에요. 아무 부담 갖지 말고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세요. 그 대신 격식을 다 갖추고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복장도 좀 갖춰 입게 하고, 바른 자세로 예배하게 가르치세요. 그리고 그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우리 가족 모두 곧 교회 가서 예배할 때가 올 거야.” 하고 말해주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서 곧 우리 가족 모두 교회 와서 예배할 날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효자교회를 사랑하셔서 곧 아이들이 바글바글 하고 뛰노는 날이 오게 하실 줄 믿습니다!


❚ 어린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

자, 오늘 어린이주일, 비록 어린이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 <어린아이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주님이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왜 어린아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가 함께 말씀으로 은혜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에는 우리 예수님이 한창 바쁘실 때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주님께 데리고 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자녀를 데리고 온 것은 예수님이 자녀들을 ‘만져주시길’ 바랬기 때문이지요. ‘만져주심’이 무슨 뜻일까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속죄일 저녁에 부모가 자기 자녀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축복 기도를 받는 풍습 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영아축복기도지요. 아마도 이런 풍습에 근거해 예수님이 자기 자녀를 축복기도 해주기 바라서 데리고 왔을 테지요. 그럼 당연히 기도해줘야 합니다. 만사 제쳐놓고 그 아이를 위해, 그 자녀를 위해 성심을 다해 간절히 축복하고 기도해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 가정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미래요, 이 나라 이 민족의 미래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축복해야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15절 말씀을 봅시다.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제자들이 어떻게 했어요? 꾸짖습니다. 부모들을 야단 친 거에요. 왜 부모들을 꾸짖었을까요? 이런 제자들의 행동은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아이들이 사람 취급 못 받을 때거든요. 사람 숫자 셀 때, 인구조사 할 때 당연히 애들은 빠집니다. 아이들은 노동력에는 도움이 못 되고 밥만 축내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이들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야말로 참 ‘귀찮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당시 고대사회에서 부모는 자녀를 죽이거나 살릴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방민족들 중에는 태어난 자녀가 아들이면 살리고 딸이면 죽일 권리도, 이방 신에게 자식을 산채로 태워 제물로 바칠 권리도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식은 내가 낳은, 내 꺼, 내 소유니 내 마음대로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 취급도 못 받고 귀찮은 존재인 아이들을 축복해 달라고 예수님께 데리고 왔으니, 그것도 예수님이 제일 바쁘고 피곤하실 때 눈치꼬치도 없이 애들 축복해 달라고 데리고 왔으니 정말 귀찮은 거에요. 이렇게 눈치 없는 부모들을 철없다며 꾸짖은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어린이들이 지금처럼 존중받고 대접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소파 방정환 선생(사진1) 등이 참여한 일본유학생 모임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1923년 어린이날을 처음 제정했으니 이제 100년이 채 못 됐지요.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부터 ‘어린이’라는 말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어린이’라는 말 대신 ‘아이’ ‘애’(경상도 말로는 ‘’) ‘어린애’ ‘어린 것’ 심지어 ‘아새끼’ 식으로 아이들을 깔보고 낮춰 부르는 말이 더 많이 쓰인 겁니다. 이유는 유대인들과 같아요. 애들이 노동력에 별로 도움이 못 되고 밥만 축내는 귀찮은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 때까지도 가난한 부모가 어린 자녀를 팔아넘기기까지 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존중하고 위해주자고 하니 당시 어른 중에는 “저 양반 참 배부른 소리 한다. 어른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무슨 헛소리냐?” 비웃은 사람도 많았겠지요.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방정환 선생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다음 세대’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 건데 그 고귀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귀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부모들을 꾸짖은 겁니다. 안 그래도 예수님이 바쁘신데, 어른 고쳐주고 설교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분주하고 피곤한데 언제 그 귀찮고 쓸모없는 아이들을 만져주고 축복해 줄 시간이 있냐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 예수님이 아주 뜻밖의 반응을 보이십니다. 마가복음 10:14 말씀을 봅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예, 노하십니다. 화내십니다. 누가복음에는 안 나오지만 마가복음에는 분명히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 화 잘 안내시는 분이거든요? 공생애 기간 두어 번,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화내신 일이 없는, 우리 주님은 화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참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십니다.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는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시는 분인데 그 뜻도 이해 못하고 귀찮아하며 아이들과 부모를 내쫒은 제자들의 무지를 크게 나무라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이 뭡니까? 마가복음 10:16을 봅시다.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우리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맞아 품에 안아주고 안수하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사진2). 그만큼 우리 주님은 어린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 것이지요.


❚ 어린아이 마음

자,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이게 중요하겠지요? 본문에 두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첫째, 주님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어린이들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린이에 대한 주님의 큰 사랑은 바로 앞에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0:16에 잘 나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봅니다.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어린이들을 품에 안고, 그 머리 위에 손 얹어 안수하고, 축복기도까지 아주 찐~하게 해주신 겁니다. 여기서 ‘안았다’는 말은 팔을 구부려 껴안는 것을 뜻합니다. 이 낱말이 신약성경에 딱 두 번 밖에 안 나오는데 둘 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껴안은 경우입니다. 이 행동은 그만큼 큰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껴안는 행동을 뜻합니다. 부모들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안수하고 축복기도 해주기만 바라고 데려왔을 뿐인데 예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꼭 껴안아 주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또 아이들을 꼭 껴안은 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정성스럽게 축복기도를 해주십니다(사진3).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어린이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셨습니까? 이렇게 품에 안고 안수하고 축복해준 대상이 또 누가 있습니까? 이 모든 특별한 행동들을 볼 때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아이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1시간 내에 마치려면 시간이 빡빡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갓 태어난 신생아가 교회에 나오면 꼭 안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도 가끔 그렇게 기도합니다. 이런 행동은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안수하고 축복하는 것이 목회자만 할 수 있는 일인 줄 아시는데 하나님은 모든 부모에게 자녀 머리 위에 손 얹고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자 의무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기 자녀와 손자 손녀 축복하는 이 특권과 의무를 게을리 하면 안 돼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모님들은 반드시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특히 자녀들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 해 주세요. 축복의 기도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반드시 형통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특권 중 하나가 자녀의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는 일인데 “내가 이렇게 안수기도 해도 되나?” 의심하거나, 귀한 줄 알면서도 게을러서 귀찮아서 안 하면 우리 자녀는 혹시 세상적으로는 성공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꼭 자녀들과 자녀손들 축복기도, 안수기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유난히 사랑하고 축복하신 이유 두 번째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런 어린 아이들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8:16 말씀 읽어볼까요?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 이런 자, 이런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 나라가, 천국이 어린아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신 걸까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17절 말씀 읽습니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 천국을 어린아이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거기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잠시 어린이들의 특성을 살펴봅시다. 어린이들은 순수합니다. 깨끗합니다. 또 맑습니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특성 때문에 많은 분들은 이 “어린아이같이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작 말씀하고자 한 것은 순수함, 깨끗함, 맑고 투명함, 이런 어린아이들의 특성이 아닌 바로 어린아이들의 ‘수용성(受容性)’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수용성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아이들은 백지와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 그대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부모가 정말 중요한 겁니다. 아이들은 말을 어떻게 배우나? 부모의 말을 따라하면서 언어를 배웁니다. 그래서 부모가 언어장애가 있으면 자녀들이 정상이면서도 어려서 말을 잘 못 배우는 경우가 있는 거에요. 또 자녀들은 부모의 태도나 행동도 따라하며 배웁니다. 주는 그대로 받아먹고 가르치는 그대로 따라 합니다. 그야말로 백지처럼 그리는 대로, 가르치는 그대로 아이들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 부모가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건전한 행동과 말을 하면 자녀도 그대로 본받아 건전한 인격으로 자라게 되지만 부모가 평상시에 쓰는 말이나 행동이 거칠고 상스러우면 자녀도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자녀가 지금은 다 장성해 시집장가 갔지만 애들 어렸을 때 교회 집사면서도 마실 거 다 마시고 피울 거 다 피우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두 살쯤 된 아들이 볼펜을 입에 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그날로 담배 끊었답니다. 그래요. 애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부모의 행동과 삶을 다 보고 그대로 따라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나온 거에요.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백지 같은 상태에서 부모의 교육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천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어른들은 대개 고집이 세지요. 왜 그럴까요? 그만큼 세상을 오래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도 어른입네 하며 자기주장 앞세우고 자기 생각과 고집 내세우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 참 어렵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주시는 은혜 그대로 받아먹고, 여기 복 받는 비결이 있다고 하면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대로 순종하여 따르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신다면 절대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 그런 마음, 그런 수용성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닌 지 오래된 성도들보다 오히려 이제 막 교회 나오기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믿는 새가족들이 더 은혜를 잘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우리, 나는 닳고 닳아서 은혜 못 받는 것 아닌가,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떤 성도입니까? ‘어린아이 마음’을 품은 성도,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주는 그대로 먹고, 가르치는 그대로 순종하고,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도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 들어가는 입장권을 주실 겁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생각, 인간적인 고집에 사로잡혀 나는 어른인데, 머리 다 컸는데, 교회 오래 다녔는데, 직분도 있는데 하며 이젠 좀 내 맘대로 살고 내 맘대로 믿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코 천국입장을 허락 받을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어린이주일에 주님 말씀 무조건 순종하며 ‘어린아이 마음’을 품고 천국행 입장권을 꼭 받는 축복의 사람 되기를 바라고, 그리하면 주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고 안수하시고 “이 천국으로 들어오라!” 축복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내 자녀와 자녀손도 똑같이 복 받게 될 겁니다. 이렇게 온 가문이 복 받은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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