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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칭송받는 교회 (4) : "생명을 살리는 추수감사주일"
  • 설교일2019-10-13
  • 성경본문누가복음 14:15-24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30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설교내용

❚ 거절당한 초청장

요즘 우편물을 받을 때 가끔 긴장되고 겁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청첩장입니다. 결혼식 청첩장 말입니다(사진1). 전에는 성도들이 자녀 결혼한다고 가져오는 청첩장이나 선배님들이 보내는 청첩장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친구가 보내는 청첩장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제 슬슬 제 친구들도 자녀들을 시집 장가 보낼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요즘 제 주머니에서 경조금 지출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제 친구들이 부모님은 한 분 두 분 돌아가실 때가 되었고, 자녀들은 시집 장가 보낼 때가 되다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경조비 청구서가 날아오는데 얼마 전에는 친구들 경조비와 노회와 인근 목사님들 경조비가 자그마치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나가더군요. 빠듯한 살림에 보통 부담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우편물을 받을 때 또 청첩장이 오나 가끔 겁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경조비가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시죠?

물론 청첩장 온다고 다 축의금을 보내고, 초청장 온다고 다 초대에 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이름도 잘 모르는 분들이 보내는 청첩장이 있어요. 그냥 넘어가야겠지요. 요즘은 여기저기 오라는 초대장이 너무 많습니다. 다 갔다가는 큰일 나지요. 그래서 초청장 받았지만 못 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꼭 가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 친구 자녀 결혼식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가야 할 때가 있고, 이런 초청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가야 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꼭 가야 할 곳과 안 가도 되는 곳 구분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초청장 보내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분은 꼭 오리라 믿고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꼭 와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꼭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안 옵니다. 시간이 되어 기다리는데 안 옵니다. 얼마나 실망이 크겠습니까?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요즘 ‘노쇼(noshow)가 문제라지요? ‘노쇼’란 예약을 하고 오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사진2). 식당을 예약해 놓고 안 나타납니다. 식당주인은 자리 다 비워놓고 음식까지 준비했는데 예약한 손님이 안 오니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화날까요? 우리나라는 노쇼가 너무 많답니다.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철저하게 지킬 줄 모르는 사회풍조가 큰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꼭 와야 하는데, 반드시 오리라 믿고 초청했는데 온다고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안 오는 사람, ‘노쇼’입니다. 정말 화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약속해서 멋지고 성대한 잔치가 되겠구나 너무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잔치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종들을 보내 미리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에게 “이제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세요.” 통보하는데 이런 세상에! 전부 다 못 온다는 겁니다. 이유가 다양합니다. 한 사람은 “나는 최근에 을 샀는데 거기 나가봐야 하니 못 가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합니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최근 소 다섯 겨리(다섯 쌍이라는 뜻이니까 열 마리입니다)를 샀는데 밭에 나가 테스트를 해봐야 해서 못 갑니다.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그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가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를 기쁘게 해줘야 해서 못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 거절의 이유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게 다 잔치에 못 갈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 가지가 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이유입니다. 생계문제나 집안 일로 못 간다는 것도 당연히 이유가 되고 또 장가간 사람은 신명기 24:5에 갓 장가간 사람은 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거든요. 최소한 1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는 겁니다. 장가 든 사람은 전쟁터 나가는 것도 면제되는데 잔치에 안 나가는 것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사람들이 댄 이유는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하고 절대 초청을 거절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풍습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에 의하면 잔치를 여는 사람이 초청할 때 반드시 두 번에 걸쳐 합니다. 1차 초청은 종을 통해 “우리 집에 잔치가 있으니 몇 월 며칟날 우리 집에 꼭 오세요.” 하고 초청을 하는 겁니다. 물론 못 올 사정이 있는 사람은 이 때 미리 사정 이야기를 하겠지요. 2차 초청은 다시 한 번 종을 보내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니 빨리 오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상황은 이미 1차 초청에 응한 사람들에게 빨리 오시라고 2차 초청을 한 것인데 그제야 이런 저런 핑계로 초청을 거절한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경우가 생기면 초청한 사람에 대한 큰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아랍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선전포고로 생각한답니다. “이건 나를 모욕한 것이니 전쟁이다.” 이런다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주인이 엄청나게 분노한 겁니다. 또 이들이 댄 세 가지 핑계도 겉보기에 그럴듯하나 결코 이유가 될 수 없어요. 왜냐? 우리가 땅 살 때 산 뒤에 가봅니까? 절대 아니죠. 당연히 사기 전에 가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이미 산 밭을 나가봐야 한다니 이건 핑계가 안 된다는 겁니다. 소도 사기 전에 테스트 해 보지 사고 난 후에 테스트 합니까? 장가 간 사람이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거야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그것도 상대방을 모욕할 만큼 급한 일입니까?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참 재미있다 싶은 게 이 세 사람의 핑계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 약속을 어기게 때 제일 많이 대는 핑계가 뭡니까? 돈 문제, 먹고 사는 문제, 가정이나 집안 일 등이지요. “돈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못 가요.”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바빠서 못 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안에 일이 생겨서 못 갑니다. 마누라 때문에 못 갑니다. 마누라가 호랑이거든요. 우리 애들 때문에 못 갑니다.” 등등 말입니다. 그렇죠? 우리가 제일 많이 대는 핑계들 맞지요?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세 사람이 잔치초청을 거절하며 댄 핑계가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할 때 가장 잘 대는 핑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청하십니다. 구원의 자리로 오라고, 교회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핑계로 제일 많이 거절합니까? “사업이, 직장이 너무 바빠서 교회 못 갑니다. 나중에 좀 덜 바쁠 때 꼭 나갈께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못 갑니다.” “집안일이 바빠서” 혹은 “남편이 반대해서,” “애들이 어려서,” “자녀교육 때문에 못 갑니다.” 등등 우리가 항상 대는 핑계가 이 세 사람과 정말 비슷합니다. 물론 직장 사업 건강 가정 등등, 이 모든 게 다 중요합니다. 절대 중요하지 않다는 말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 세상에 아무리 중요해도 천국 가는 것보다, 구원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 세 사람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들 때문에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천국 초청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닐까요? 세상에 천국 초청, 천국에 들어가는 일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직장 사업 건강 가족 이런 일들 다 중요하지만 이 ‘천국 초청’에 비한다면 2순위, 3순위, 저 아래 순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초청을, 하나님의 초청, 천국 초청 구원 초청을 거절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겁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본문 24절 말씀 같이 읽읍시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번에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다시는 초청 못 받는다는 겁니다.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은 다시 기회가 있는데,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던데, 이 초청을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한 사람들은 그 이유가 아무리 중요하고 아무리 그 핑계가 그럴듯해도 절대 다시는 초청을 못 받는다는 냉정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은 다른 초청은 몰라도 이 초청은 절대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데는 다 안 가도 여기는 꼭 가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도 핑계가 안 됩니다. 왜? 이곳만큼 중요한 곳에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 가는 일, 구원 받는 일,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어떤 이유로도 거절하고 안 간다면 다시는 우리에게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꼭 이 초청에 응하시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 대신 초청받은 사람들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주인은 대신 다른 사람들을 초청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23절 말씀 한 절씩 교독합시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몸 불편한 자들맹인들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무슨 말입니까? 주인은 종들이 돌아와 거절당한 이야기를 하자 진노합니다. “그런 못된 인간들, 그런 싸가지 없는 것들은 다시는 초청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종들에게 대신 다른 사람들을 초청해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시내에 사는 가난 자들몸 불편한 장애인들입니다. 앞 못 보는 맹인다리 불편한 자들을 대신 모아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해 시내 거리와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녀 이런 사람들을 다 모아옵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주인님, 아직도 자리가 남는데요?” 합니다. 그랬더니 주인은 “길과 산울타리 가로 가서, 즉 시내 밖, 성 밖까지 가서 사람들을 다 강권(强勸)하여, 강력하게 거의 강제적인 수준으로라도 다 데려와라.” 합니다. “이런 자들을 다 강제로라도 데려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대신 초청받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비록 시내에 살긴 해도 모두 가난하거나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외되고 능력도 없어 결코 밭도 소도 살 수 없고 장가가기도 힘든 사람들입니다. 주인은 먼저 이들을 초청한 다음 그래도 잔치 자리가 비니까 이번에는 성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강권해서 데리고 와 잔치자리를 채우게 합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와 장애인들, 그리고 성 밖 사람들은 누구를 뜻할까요? 1차적으로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사람 취급도 안 했습니다. 당연히 성 바깥에 사는 사람들처럼 구원과는 상관없는 ‘구원 밖에 있는’ 자들로 봤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왜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버리고 대신 이방인들을 구원으로 초청했는지 말씀한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 그대로 되고 맙니다. 먼저 초청 받았던 선민 유대인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기에 다시는 초청 받지 못하게 되고 대신 이방인과 다른 민족들이 초청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도 구원 받게 된 겁니다.

오늘 이 비유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누구든지 천국잔치에 들어가려면 주인의 초대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구원을 받을 때 내 힘으로, 내가 가진 조건이나 자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인 되신 하나님의 허락과 초대가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수감사주일, 여러분이 초청한 태신자들은 내가 초청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내가 초청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초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초청을 전하러 간 종들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천국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천국에 그들을 초청하러 간 것입니다. 이 천국초청과 생명구원의 사명을 충실히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초청한 그들 중에도 이런 저런 핑계로 안 오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또 온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 ‘노쇼’ 오늘 펑크 내고 안 오신 분들도 있겠지요. 속상하시지요? 반대로 오늘 초청에 응해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지요? 안 오신다는 걸, 주저하는 걸 어떻게든 설득하고 밥 사주며 선물 주며 아양까지 떨며 모시고 나왔다고요? 이게 바로 본문에 나온 강권하여 모시고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정말 잘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일인줄로 믿습니다!

둘째천국잔치에 들어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초대를 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다 포기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 자기 재산을 다 판 사람처럼, 값진 진주 하나를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판 상인처럼 우리는 가장 귀한 천국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앞서 세 가지 핑계를 댄 사람들처럼 아무리 내 삶에 중요하고 내게 가치 있는 일이라 해도 천국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리고 특히 오늘 초청을 받아 우리 교회 방문한 모든 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이 사실을 깨닫고 천국 초청에 응하며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받은 천국백성들 다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구원의 기회, 천국입장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어떤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믿지요, 다음에 교회 가지요”라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 분 저렇게 바쁜데,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있는데 다음에 전도하지.” 이런 건 없다는 겁니다. 절대 이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우리들 되어야 합니다. 지금 누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죽어 가는데 사정이 있으니 나중에 와서 구해주지 할 수 있습니까? 절대 저 사람 구원하고 생명 살릴 기회를 뒤로 미루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효자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받으셨지요. 그리고 그 초청에 기꺼이 응했기에, 만사 제쳐놓고 모든 소중한 일, 귀한 일 다 뒤로 미루고 그 초청을 받아들였기에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이 계신 겁니다. 참 잘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주님은 오늘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도 다른 이들을 초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강제로 한다는 뜻도 있고 끝까지 설득한다는 뜻도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끝까지 설득해서 데려오라는 뜻입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하더라도 친절한 자세로, 그러나 끈질기게 설득해서 반드시 데리고 오라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전도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전도가 쉽나요? 어렵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전도를 해보면 참 핑계들이 많습니다. 아예 “나 교회 안 가.” 하는 사람은 차라리 포기라도 하지 별 핑계 다 대면서 나중에 가겠다고 요리 빼고 조리 빼는 사람들 보면 정말 속이 터집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그들에게 영영 기회가 안 주어질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더욱 간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강권하고 설득하고 초청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먼저 천국잔치에 초청 받아 천국백성 되심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오늘 전도해서 태신자를 모시고 오신다면 더 잘 하신 일이고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2절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아십니까?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천국잔치 자리는 좌석이 참 많은데(사진3) 아직 빈자리가 너무 많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번 반복) 이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 추수감사주일 총동원주일 천국잔치에 그들을 초청하고 채워가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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