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칭송받는 교회 (2)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 설교일2019-09-29
  • 성경본문사도행전 20:32-35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03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설교내용

❚ 쌓아놓는 삶, 빼앗는 삶, 나누는 삶

저는 어려서부터 뭔가 모으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우표를 모으고, 동전 모으고, 엽서나 카드, 사진 모으고, 뭔가를 자꾸 모으는 것을 좋아했어요. 이런 사람을 고상한 말로는 ‘수집가’라고 부릅니다. 우표 수집가, 동전 수집가, 사진 수집가 등등... 심방을 다니다보면 성도들 중에도 ‘수집가’가 많습니다. 수석(돌) 수집가도 있고, 분재나 화분 수집가도 있고, 도자기 수집가도 있고, 가끔은 ‘양주 수집가’도 계시더군요. 그럴 때 저는 양주가 진열된 진열장을 그냥 지나치지만 실은 봤으면서 모른 척 하는 거랍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뭔가를 모으고 수집하기를 좋아하던 저는 커서도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모읍니다. 음악 CD나 레코드판, 영화 DVD도 엄청 모았고, 책도 많이 모으고, 만년필 볼펜 같은 필기구도 모으고, 아무튼 수백 가지를 모읍니다. 심지어 택배 온 빈 박스들도 모아두면 뭔가 쓸데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창고 가득 모아뒀는데 그런 저를 보고 아내가 한 마디 하더군요. “아니, 다람쥐도 아니고 왜 그렇게 뭘 바리바리 쌓아 두냐.”고요. 그날로 그걸 다 치워버렸습니다. 아내 말 참 잘 듣는 남편이지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처럼 뭘 자꾸 모아두는 사람을 다람쥐라고 할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람쥐는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아 자신만 기억하는 장소에 쌓아두지요. 겨울을 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뭘 모아두고 쌓아두는 사람을 다람쥐라고 부르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다람쥐처럼 뭔가 자기 자신을 위해 자꾸 모으고, 벌어들이고, 그것들을 어딘가 계속 쌓아놓는 삶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삶을 ‘쌓아놓는 삶’이라고 이름 붙여 봅니다.

그런데 이런 ‘쌓아놓는 삶’이 있는가 하면 ‘남이 쌓아놓은 것을 빼앗는 삶’도 있어요. TV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봤습니다.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했습니다. 이 반달곰을 추적하며 어디서 뭘 먹고 사나 봤더니 그 중에 한 놈이 다람쥐가 이렇게 부지런히 모아놓은 도토리를 귀신같이 찾아내 캐먹는 겁니다. 다람쥐 입장에서는 참 얄미운 놈이지요. 그렇다고 다람쥐가 반달곰하고 맞서 싸울 수도 없고요. 심지어 요즘엔 사람들도 도토리묵 해먹는다고 산에 올라가 다람쥐가 먹을 도토리를 싹쓸이 해간다니 참 도토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얄미울까요? 인생 중에도 이런 인생이 있습니다. 자기는 힘들게 노력 안 하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너무 얄밉고 뻔뻔한 사람들이지요. 이런 인생을 바로 ‘빼앗는 삶’이라고 불러 봅시다.

마지막 인생은 ‘나누는 삶’입니다. 가진 게 넉넉해서도 아닙니다. 넘치고 남아서도 아닙니다. 나 혼자 쓸 것도 부족하지만 늘 누군가와 나누는 삶, 베풀며 사는 삶, 바로 이런 삶입니다. 가만히 보면 돈이 많다고 넉넉하다고 반드시 잘 나누고 베푸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돈도 많고 가진 것도 넉넉한데 정말 남을 위해서는 돈 한 푼도 못 쓰는 사람, 어쩌다 좀 쓰면서 벌벌 떨며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반대로 가진 게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늘 누군가와 함께 하고 베풀고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당연히 ‘남이 쌓아놓은 것을 빼앗는 인생’은 되지 말아야지요.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여 자신을 위해, 미래를 위해,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뭔가를 ‘쌓아놓는 삶’,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왕에 살 것 ‘나누는 삶’,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요. 왜일까요? 바로 이런 ‘나누는 삶’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살라고 분부하신 삶이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울의 유언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0장 말씀을 봅시다. 사도행전 20장에는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경로가 나옵니다. 3차 전도여행 중 바울은 밀레도라는 항구도시에 이르러 자신이 세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그곳으로 부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각별히 사랑했고 관심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에베소교회를 이끌었던 지도자인 장로들(오늘날로 치면 목회자들)을 불러 특별히 그들에게 당부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이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과 핍박과 흘린 눈물을 기억하고 당부합니다. 이제 내가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보면 완악한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예언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그러니 나는 여러분에게 유언을 남기는 절박한 심정으로 당부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남긴 그 유명한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20:24입니다. 같이 읽지요.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의 이 마지막 유언 같은 말씀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복음증거를 위해, 생명구원을 위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이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목양에 대한 자세를 말씀합니다. 28절 말씀을 읽지요.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노 사도의 유언과 같은 말씀은 오늘 저를 비롯해 목양의 사명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을 참으로 숙연하게 만듭니다. 또한 3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 말씀에서 바로 우리 효자교회의 목적! 뭐지요? 척하면 나와야지요.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가 나온 겁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그들이 섬기는 교회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세우라고 간곡히 당부한 것입니다. 이 바울의 마지막 당부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자꾸 하나님의 말씀 아닌 다른 것들 위에,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 위에 교회를 세우려 하기에 한국교회에 위기가 온 것 아니겠습니까?


❚ 주는 것이 복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33~35절의 당부를 남깁니다.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은이든 금이든 의복이든 어떤 재물도 요구하거나 탐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일하면서 선교하는 모범을 보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바울은 천막 짓는 일을 했습니다. 가죽으로 천막을 만들어 팔아 선교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형태의 선교, 즉 어느 교회나 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일해서 선교하는 형태를 ‘자비량(自備糧) 선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tentmaker(천막 짓는 자)’ 선교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천막을 지어 선교한 자비량 선교에서 온 말인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선교사가 다 자비량 선교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리 교회도 김사무엘 선교사를 파송해서 후원하고 있잖아요? 선교사가 선교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도 힘써 선교사를 후원해야 하고요. 다만 사도 바울은 이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남의 도움이나 신세를 지지 않고 자신이 벌어 선교하는 모범을 보였다고 말하면서, 그 까닭이 바로 자신이 전해들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이 뭘까요? 바로 35절에 나오는 이 말씀입니다.

35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실 이 말씀은 복음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구두전승으로,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예수님 말씀을 바울이 전해 듣고 여기 기록한 모양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의 내용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나처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받는 것도 물론 좋지요. 하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더 복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말씀은 1차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처럼 목회자와 장로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늘 받는 것보다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높아지지 말고 늘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는 주님이 친히 주신 말씀처럼 받는 것보다 주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높아지지 말고 늘 낮아지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진정 복 받은 삶이라는 겁니다.


❚ 나누는 교회, 주는 교회

올해 우리 효자교회는 10월 13일, 앞으로 두주 후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의 컨셉은 이웃과 함께 하는 추수감사주일, 지역과 나누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태신자를 전도해서 교회에 모시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심식사를 교회 주변 식당에서 하면서 지난주일 말씀드린 것처럼 그날 단 하루만이라도, 추수감사주일 하루만이라도 지역주민들과 상인들과 기쁨을 나누는 추수감사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추수감사주일에는 교회에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나서 밥도 주고 오후에는 추수감사 찬양축제도 하고 즐겁게 보냈는데 왜 올해 추수감사주일에는 밥도 안 주고 태신자와 전도자는 뷔페 준다는데 우리보고는 바깥에 나가서 내 돈 보태서 밥 사먹으라고 하느냐?” 이런 불평을 하는 분 없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이런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말씀드립니다. 진정한 감사, 진짜 추수감사는 우리끼리 밥 먹고, 우리끼리 잔치하고, 우리끼리 즐거운 게 아닙니다. 함께 나누고 베풀고 주는 날, 이게 바로 진정한 추수감사라는 겁니다. 이게 진정한 감사고, 이게 진짜 복 받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번 추수감사주일에 이걸 한번 실천해 보자는 겁니다. 오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예수님 말씀에 의지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역시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나눠주는 교회, 베푸는 교회, 그런 성도가 되자는 겁니다. 나누고 베풀고 주는 게 더 복이 있다고 했지요? 여러분이 바로 그런 성도가 되고, 우리 효자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자는 겁니다. ‘인턴’(The Intern)이라는 영화(사진3)에 보면 로버트 드니로라는 배우가 나이 70세 된 인턴직원으로 나옵니다. 창업 1년 반 만에 기업을 키워 성공신화를 이룬 30세 젊은 여사장이 나이 지긋한 경험 많은 인턴직원을 채용했는데 이 70살 인턴직원은 늘 손수건을 갖고 다니지만 자기가 쓰지는 않습니다. 쓰지도 않는 손수건을 왜 갖고 다니냐고 동료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가 울면 빌려주기 위해서지.” 실제 그 손수건은 여러 가지 일과 고민으로 지친 젊은 여사장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지치고 상한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된 손수건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삶을 살려면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손수건도 좀 가지고 다니고, 무엇보다 돈과 시간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좀 여유 있게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우리가 돈이 많아 남아돌아서가 아닙니다. 돈도 시간도 늘 부족하지요. 하지만 그 부족한 중에도 적은 것을 남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남겨둘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 생길까요? 이번 추수감사주일은 태신자 전도로 남의 생명도 살리고, 교회에서 나눠드린 포항사랑상품권에 내 돈과 시간을 좀 더 보태서 지역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요즘 먹고 살기 너무 힘든 지역의 영세식당과 상인들에게 그날 하루라도 웃음을 선물해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주일 하루 이벤트로만 끝날 게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 효자교회가 이 지역에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잊어주는 교회, 잊어주는 성도가 되자는 겁니다. 설교 첫머리에 다람쥐 얘기를 했지요? 다람쥐는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으기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다람쥐는 가을에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아다 땅에 묻어두는데 자기가 도토리를 묻은 장소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람쥐가 묻어놓고 잊어버린 그 도토리는 나중에 도토리나무로 자라 다시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선물해 줍니다. 다람쥐가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자기가 묻어둔 도토리를 전부 찾아 먹어버렸다면 아마도 산속에 도토리나무가 씨가 말라 다람쥐도 굶주리게 될 겁니다.

요즘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참 많고 기억력 좋은 사람은 참 많은데 알면서 잊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011년 지금의 이 교회당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초창기 난관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회 뒤편 빌라에 사는 주민들과의 갈등이었습니다. 교회가 떡하니 집 앞을 막는다니 그분들도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데 최선을 다해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교회 공사차량을 막아서기도 하고 주일에 제 방에 몰려와 저를 붙들기도 했습니다. 평상시 주차장 사용이나 이사하실 때 여러 가지로 편의를 봐드렸는데 이렇게까지 하시니 섭섭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잊었습니다. 아니, 오늘 설교 때도 말씀드리는 걸 보면 잊은 건 아니고 잊어버려 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섭섭한 것 아쉬운 것 다 잊어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날 섭섭하게 한 사람들, 아프게 한 사람들, 좀 잊어버려주는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져주는 교회, 져주는 성도가 되자는 겁니다. 이길 수 있지만 져주는 겁니다. 충분히 이길 힘이 있지만 일부러 져주는 겁니다.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성도는 그래야 합니다. 기를 쓰고 이겨먹으려 들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사람은 얻을 수 없습니다. 생명은 절대 구할 수 없습니다. 긴 얘기 안 하겠습니다. 나누는 것, 베푸는 것, 그리고 잊어주는 것, 져주는 것, 다 같은 뜻입니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한다는 것 참 힘든 일입니다. 저도 압니다. 저도 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을 얻습니다. 마음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그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정말 복된 일인 것입니다.

우리 효자교회, 그런 교회가 됩시다. 우리 효자의 성도들, 그런 성도가 됩시다. 거기에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예배 폐회할 때 늘 부르는 파송의 찬양,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1절만 불러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천천히 뜻을 생각하며 한번만 더 불러볼까요?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이, 그리고 우리 효자교회의 존재 자체가 ‘사랑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이 계시는 그 곳’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facebook tweeter line band
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45여기가 좋사오니 (3) : "애굽 땅이 좋사오니"이하준2019.11.1044
44여기가 좋사오니 (2) : "문지기가 좋사오니"이하준2019.11.0367
43여기가 좋사오니 (1)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이하준2019.10.2767
42찬 바람이 불면...김태훈2019.10.2079
41칭송받는 교회 (4) : "생명을 살리는 추수감사주일"이하준2019.10.13130
40칭송받는 교회 (3) : "이웃과 함께 하는 추수감사주일"이하준2019.10.06123
>> 칭송받는 교회 (2)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이하준2019.09.29103
38칭송받는 교회 (1) : "온 백성에게 칭송받는 교회"이하준2019.09.22118
37왕이신 나의 하나님 (7) : "남 왕국 최후의 왕들"이하준2019.09.15118
36왕이신 나의 하나님 (6) : "종교개혁자 히스기야와 요시야"이하준2019.09.0894
35왕이신 나의 하나님 (5) : "번영의 명암 여로보암 2세"이하준2019.09.0191
34왕이신 나의 하나님 (4) : "분열의 주범 르호보암과 여호보암"이하준2019.08.25106
33왕이신 나의 하나님 (3) : "아버지 다윗, 아들 솔로몬"이하준2019.08.18116
32왕이신 나의 하나님 (2) : "사울과 다윗의 차이"이하준2019.08.11151
31왕이신 나의 하나님 (1) : "누가 왕이신가?"이하준2019.08.04114
30전(前)과 후(後) (4) : "알파와 오메가"이하준2019.07.2896
29전(前)과 후(後) (3) : "시작은? 나중은?"이하준2019.07.21147
28하나님과 관계, 있으십니까?관리자2019.07.14209
27전(前)과 후(後) (2) : "구원, 그 이전과 이후"이하준2019.07.07149
26전(前)과 후(後) (1) : "주전(B.C.)과 주후(A.D.)"이하준2019.06.30147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