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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왕이신 나의 하나님 (2) : "사울과 다윗의 차이"
  • 설교일2019-08-11
  • 성경본문사무엘상 15:17-23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51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설교내용

❚ 루저들의 이야기

지난 2009년 ‘루저 논쟁’이라는 아주 이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KBS 방송 ‘미수다’(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한 여대생이 한 발언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인데 이 예쁘장한 여대생은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oser=패배자)다. 남자는 키가 180cm는 돼야 한다.”고 말해서(사진1) 아주 난리가 났어요. 뭐 이 기준으로 보면 저도 루저고, 목사님들 중에 김태훈 목사님 빼고는 다 루저에요. 여기 계신 남자 분 중 대부분도 루저고요. 이 방송이 나가자 도대체 이런 말을 한 여자가 누구냐 하고 이른바 ‘신상 털기’에 들어가서 인터넷에 실명이 공개되고, 심지어 고등학교 때 사진까지 공개되며 “이렇게 못생긴 애인데 성형수술 받은 거다.” 엄청난 비난을 받고, 미수다 프로그램 폐지요구가 빗발치고, 급기야 “이 발언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피해를 입었다.”며 천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남성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루저 논쟁’입니다.

2009년에 일어난 일이니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 말을 한 아가씨는 시집을 갔을까요? 그때 받은 비난 때문에 이 아가씨 상처를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요? 그런데 저는요, 이 사건을 보면서 상처 안 받았습니다. 제 키가 180cm보다 아주 조금 모자라든요? 그런데 키가 작은 걸 어떻게 해요.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합니까?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키 큰 사람, 잘 난 사람, 공부 많이 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앞에서 별로 열등감 안 느낍니다. 왜냐?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니까요. 왜 우리는 괜히 끊임없이 나를 남과 비교하며 “난 못났어, 나는 불행해.” 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키도 작고, 못나고, 돈도 없고, 공부도 남들보다 못했다, 그래서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내 인생’은 내 인생일 뿐입니다. 저 사람과 비교해서 괜히 열등감 느끼고 인생을 힘들게 만들 필요가 전혀 없어요.

지금도 세상은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10년 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조금도 안 변했어요. 끊임없이 세상은 우리의 조건을 따집니다. 우리의 외모와 조건과 학력 재력 따지면서 사람을 ‘성공한 사람’과 ‘루저’(실패자) 딱 둘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스펙, 스펙’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갈 겁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일까요?

여러분! 성경은 루저들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루저’들입니다. 실패자요 패배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영웅도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조건이나 능력이나 스펙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볼품없는 마른 작대기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터키에 성지순례 갔을 때 이스탄불에 있는 토카프 궁전이라는 곳에 갔습니다(사진2). 원래 오스만 제국 황제인 술탄이 쓰던 궁전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 가면 정말 신기한 유물들이 많아요. 다윗의 칼, 아브라함이 쓰던 밥그릇, 모세의 지팡이 등등 엄청납니다. 오스만 제국이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을 지배할 때 모아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진품인지는 믿거나 말거나에요. 사실 역사학자들이나 성서학자들은 진짜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때 참 신기했던 것은 모세의 지팡이라고 하는 지팡이가 너무 작은 거에요. 영화 같은 데 보면 모세의 지팡이가 무슨 산신령 지팡이처럼 길고 멋있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이 박물관에 가보니 (사진3) 이 사진처럼 생각보다 너무 작고 평범한 나무 지팡이입니다. 물론 이 지팡이가 진짜 모세가 쓰던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지만 거기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우리가 모세의 지팡이를 너무 거창하고 멋있는 지팡이로 오해했구나.” 실제로 학자들도 모세의 지팡이가 이 그림(사진4)처럼 작고 뭉툭하고 낡은 지팡이였다고 봅니다. 당연하지요. 미디안 광야의 가난하고 천한 목동이 양 몰 때 쓰던 지팡이가 어찌 거창하고 멋있는 지팡이였겠으며, 40년 동안이나 쓰던 그 지팡이는 또 얼마나 낡아빠졌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처음 부르셨을 때 겁먹고 피하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출애굽기 4:2 말씀입니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은 그 볼품없고 낡은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어 올린 지팡이도 바로 이 볼품없는 지팡이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지팡이도 이 지팡이였어요. 중요한 것은 그 낡은 지팡이가 누구 손에 들렸느냐 하는 겁니다. 지팡이나 멋지고 잘나서 쓰임 받는 게 아니라, 못나고 낡은 지팡이라 할지라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 손에 들리면 위대하게 사용됩니다.

마찬가지로 낡고 메마른 지팡이 같은 인생들, 못나고 부족한 루저들, 실패자 패배자들이 하나님 손에 들림 받아 쓰였기 때문에 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바울 등 성경의 모든 위대한 인물은 한 결 같이 다 이런 약점 많은 사람들, 루저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나도 약점 하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약점이 열등감이 되면 그 약점은 나에게 착 들러붙어 항상 나를 괴롭히고 늘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귀신, ‘물귀신’이 되어버립니다. 반면 그 약점을 잘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내놓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이유가 되고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약하고 부족하지만 오히려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 손에 들려 귀히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사울과 바울의 차이

오늘 이렇게 루저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설교제목 <사울과 다윗의 차이>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루저 이야기를 길게 한 겁니다.

지난주일 말씀 나눈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게 아니라 왕이 계셨지요. 홀로 영원하신 왕,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인도하신 왕, 바로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나라들과의 전쟁을 거듭 겪으면서 “우리에게도 이방나라들처럼, 특히 블레셋 민족처럼 왕을 달라.”고 떼를 쓰게 되지요. 하나님과 사무엘 선지자는 끝까지 말렸지만 워낙 완고하게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왕정제도를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세워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그가 바로 사울 왕입니다.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참 훌륭한 임금감이었습니다. 용모와 조건이 뛰어나고 모든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얼마나 좋은 조건, 최고의 스펙을 갖춘 사람인지는 사무엘상 9장과 10장에 잘 나와 있는데 너무 많지만 몇 가지만 봅시다.

첫째, 그는 좋은 가문 태생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1을 읽습니다.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사울의 아버지는 베냐민 지파 출신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원어에는 ‘부유한, 저명한’이라는 뜻)으로 그는 꽤 좋은 집안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 역시 꽤나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사울이 명문집안 출신이었다는 거지요.

둘째, 사울은 용모가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잘 생겼다구요. 사무엘상 9:2은 사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정말 모두가 인정할만한 잘 생긴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키가 훤칠하니 적어도 180cm는 넘었다는 거니까 루저는 아니라는 거지요.

셋째, 사울은 효자였고 성실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에 보면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아들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시키자 그는 두말 않고 찾아 나서 사환을 데리고 천지사방을 다 다닙니다. 아버지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효자요 성실한데다 맡은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마는 책임감과 집념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넷째로, 사울은 누구보다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에서 사울은 선지자에게 암나귀의 행방을 물으러 갈 때 드릴 예물이 없자 사환의 손에 마지막 남은 여비인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기고 잘 섬기려는 좋은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게다가 사울은 영적으로도 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0장에 보면 사울은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성령)이 임하여 예언을 합니다. 영성(靈性)과 영력(靈力)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다섯째,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사울은 슬며시 짐 보따리 사이에 숨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겸손에서 온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그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동네 불량배(양아치)들이 “어떻게 저런 놈이 우리를 구원하겠냐?”고 멸시하고 모욕해도 사울이 잠잠히 참는 모습이 나옵니다. 절제와 인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사울은 왕이 되기 전 이렇게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나 신앙으로나, 인격 성품 어느 면에서 봐도 정말 완벽한 사람이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른 후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완벽한 사울이 임금이 된 후 점점 교만해지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번제를 드리려는데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제 손으로 직접 번제를 드리는 죄를 범하기도 했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말렉 백성과 소유와 가축까지 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빼앗은 가축 중에 좋은 것을 남겨둡니다. 목숨 걸고 싸워 빼앗은 가축인데 아깝게 왜 다 죽이냐 이겁니다.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에게 요구한 첫 번째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가문도 재력도 키도 외모도 그 어떤 조건도 아닌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조건 다 갖춘 사울은 왕이 된 후 자기 생각과 기준과 판단에 따라 순종이 아닌 불순종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불순종을 책망하며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 사무엘상 15:22~23 말씀입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제사 아무리 잘 드리는 것보다, 그 어떤 종교적 행위를 잘 하는 것보다, 그리고 그 어떤 자격이나 스펙보다 하나님은 순종을 더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 불순종의 길로만 달려간 사울은 나중에 골리앗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장군이자 자신의 사위가 된 다윗을 몹시 질투하여 죽이려고까지 듭니다. 막나가도 너무 막 나간 거지요. 그래서 사무엘상 16:14은 말씀합니다.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대신 그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이미 사울은 끝난 거지요. 여전히 아직 왕이고 좋은 조건 유지하고 있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끝난 겁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 받고 아들 요나단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울 왕과 비교해 아주 대조적인 인물이 한 명 등장합니다. 저 베들레헴이라는 시골 작은 마을 출신 촌뜨기입니다. 게다가 아버지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막내로 태어나 들에서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형들은 집안에 앉아 편안하게 밥 먹고 있을 때 이 막내는 들에 나가 양을 치고 있었지요. 전쟁터에 나간 형들에게 도시락 배달하는 일도 이 천덕꾸러기 막내 몫이었습니다(저는 4형제 막내로 태어나 온갖 잔심부름은 제 몫이었기에 이 사람 심정 잘 이해합니다). 그는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윗의 조건은 사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루저라니까요? 들에서 양이나 쳐봤지 무슨 무기 들고 싸우는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군대 경험도 없고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심부름이나 도맡아 하던 촌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화려한 사울 대신 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촌놈 양치기에게 왕위를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무 것도 없는 루저, 이 못난 인간 다윗, 하지만 다윗보다 위대한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위대했던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위대하셨던 겁니다. 다윗은 키나 외모나 방패나 칼과 창이 아닌, 화려한 스펙이나 조건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하나만 의지해 물맷돌을 들고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웁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나님은 나의 목자십니다. 내가 양을 쳐보니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양에 불과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없어도, 은과 금도 없고 그 어떤 조건도 스펙도 없지만 그 믿음 하나만으로 역사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걸작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것 하나만 보시고 다윗이라는 사람을 그토록 위대하게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금수저 흙수저 따지고 계십니까? 아직도 태어난 환경이나 집안이나 부모를 탓하며 살고 계십니까? 아직도 세상에서 우러러보고 인정해주는 스펙이나 자격 갖추려고 몸부림치고 계십니까?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실력도 못 갖추고 능력도 없으면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외치지는 맙시다. 절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하나님께 쓰임 받겠다는 생각은 틀린 겁니다. 왜? 하나님은 사울은 버리시고 다윗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수고하고 무슨 자격을 갖추려 해도 절대 그것으로 쓰임 받는 게 아닙니다. 먼저 나는 마른 작대기 같은 자라고, 낡고 볼품없는 지팡이 같은 자라고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이 못난 내가 하나님 손에 들림 받아 귀하게 쓰이길 원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잘난 자들보다 나를 먼저 들어 써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열등감이나 비교의식 속에 사로잡혀 살지 마시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래! 나는 너무 못 났지만 우리 하나님은 너무 잘난 분이고 위대한 분이야! 바로 그 하나님이 나를 써주실 거야!” 이렇게 고백하며 나를 온전히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맡기십시오. 바로 그때부터 나를 통해 위대한 일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효자교회 창립 7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946년 해방 이듬해 천막을 치고 9명의 성도가 기도처로 시작한 우리 교회가 73년 만에 위대한 역사를 이룬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이 미약한 교회가 창대한 교회가 되기까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 믿음의 선배들이 정말 수고하고 희생했기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교회창립 기념주일에 이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 하나만 의지하여 이 땅에서 앞으로 더욱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일으켜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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