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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왕이신 나의 하나님 (1) : "누가 왕이신가?"
  • 설교일2019-08-04
  • 성경본문사무엘상 8:19-22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14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설교내용

❚ 독재자 신드롬

이 분은 1917년 11월 14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인생은 출생부터가 순탄치 않았지요. 그의 어머니는 나이가 45살이나 된 데다 큰딸도 아이를 임신 중이라 도저히 안 되겠다, 태중의 아이를 지우려고 최소 6~7가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간장을 한 사발씩 마시기도 했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써도 실패하자 “애가 태어나면 솜이불에 둘둘 말아 아궁이에 던져버려야지.”라는 결심까지 했지만 이 모진 인생이 결국 세상에 태어나고야 말았답니다.

그는 성장하여 사범학교 졸업 후 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국군이 되어 승승장구하다가 남로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형까지 받았지만, 집행면제를 받고 국군 소장(별 두 개)까지 진급했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5,6,7,8,9대 대통령으로 17년간이나 재임하다가 1979년 10월 26일 62세 나이로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심복의 총에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박정희 대통령입니다(사진1).

그런데 이 분이 사망한 지 꼭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인물에 대해 평가가 분분합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특히 지도자는 공과(功過)가 다 있게 마련이라 공(功), 잘 한 것도 있고, 과(過) 잘 못한 것도 있는데 이 박정희 대통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인 경우도 드물어요. ‘군부독재를 시작한 독재자’라는 엄청난 비난도 받지만 여전히 상당수로부터 향수를 넘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연세 지긋한 어르신 중에 이런 말씀 많이 합니다. “박 대통령 아니었으면 보릿고개에 그 지지리 못살던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겠어?” 심지어 그 어르신이 이런 말씀까지 하시더군요. “잘 살게만 해 준다면 독재를 해도 좋지.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더 잘 맞아.”

최근 우리 주변 국가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 수상(사진2)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참 고생이 많은데 이런 나라들을 보면 꽤 오랜 기간 집권하면서 거의 독재 수준의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별명이 ‘시황제’라네요.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 국민들을 보면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나라가 부강해졌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반응입니다. 얼마 전 일본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아베 수상이 좀 문제도 있고 뒤가 구린 것도 있지만 나라를 이렇게 잘 살게 해주고 경제가 성장했는데 뭐가 문제냐?”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이런 현상을 독재자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유약한 지도자는 싫다. 독재자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면 좋겠다. 깃발 들고 앞으로! 하면 전 국민이 우~ 하고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백성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독재자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 우리에게도 왕을 주소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런 ‘독재자 신드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본문의 배경은 사무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인데 이 시기를 우리는 사사시대라고 부르고 이 사사시대에 대한 기록이 사사기에요. 헌데 사사기의 맨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사사기 21:25은 사사기 전체에 대한 결론인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사사시대가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백성들을 다스릴 왕이 없어서 지파별로, 집안별로, 개인별로 제각기 자기 소견대로,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뭐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이거 하지 마라 참견하는 사람도 없고 내 맘대로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데 나쁠 것 있겠어요? 아주 자유롭고 좋았겠지요. 헌데 다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웃나라와, 특히 철천지원수 같은 블레셋과 싸움만 했다 하면 맨날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왜 우리가 저 이방인들하고 싸움만 했다 하면 맨날 깨질까? 물론 무기가 저쪽이 훨씬 좋고 군사 숫자도 많다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니야? 아! 저들은 전쟁이 나면 이 지휘를 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우리는 한마디로 당나라 군대다(군대에 가보니 군기가 빠진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고 하던데 왜 그런지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질서도 없고 군기도 빠지고 우왕좌왕한다. 아하! 이건 순전히 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구나.”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때까지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을까요? 왕이 될 만한 인물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있는 독특한 사고방식, 즉 “우리에게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이방민족처럼 왕이 필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다고, 왕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대표로 모든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몰려가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니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백성들이 왕을 달라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8장을 보면 이유가 나와요. 그것은 사무엘의 후계자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무엘 선지자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고 사무엘 선지자가 하는 말을 진리로 알고 순종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사무엘이 나이가 늙어가자 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될 사람이 필요하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문제는 사무엘 선지자의 두 아들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지만 이 두 아들이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던 겁니다. 사무엘상 8:1~3 말씀을 교독합시다.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여러분 집에도 그런 경우 있지요? 자녀들이 다 부모를 닮는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산부인과에서 바뀐 거 아니야?).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아버지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지만 완전 아버지와 딴판, 아버지를 안 닮고 뇌물을 받아 판결을 굽게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고 백성들은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후계자에 대한 불안감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정작 진짜 왕을 달라는 이유는 딴 데 있었다. 그게 뭐냐? 그 이유가 4~5절에 나옵니다. 같이 읽읍시다.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물론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사무엘이 늙어가고 자식들은 한심하다는 건데 실은 그 다음 말 속에 지네들 본심이 들어있는 겁니다.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주세요!”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 백성 안 하고 이방 나라들처럼 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한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만 있으면 우리는 무조건 전쟁 이긴다, 저 철천지원수, 맨날 붙기만 하면 처참하게 깨지는 블레셋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런 결정적인 착각에 빠진 겁니다.

자, 아무튼, 우리는 사무엘이,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도 왕을 세우는 데 반대한 이유가 뭔지부터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오늘 본문 바로 앞 10~18절에 길게 나오는데 한 마디로 왕이라는 게 너희가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이방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 왕정제도를 시작하면 그 왕은 너희 기대와 달리 너희 위에 군림하면서 착취만 일삼을 것이다. 너희가 왕에게 내놓아야 할 게 엄청 많아진다는 겁니다. 왕이라는 게 보기는 폼 나지만 왕궁 세워야지요, 운영비가 좀 많이 들어갑니까? 군대도 유지해야지요. 그러니 백성들의 아들과 딸을 데려다가 군대도 만들고 노역도 시키고 궁중에서 일도 하게 할 거다(‘부역(負役)’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엄청난 세금(稅金)도 내야 한다. 너희 생각하고 달라, 이래도 왕 달라고 할래? 이런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이유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반대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7절에 나옵니다. 같이 읽지요.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사무엘아, 네가 지도자인데 백성들이 지금 왕을 세워달라니 섭섭하지? 하지만 백성들이 왕을 달라는 것은 너를 버리겠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인 나를 버리겠다는 뜻이다. 나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인데 나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 대신 자기들 대표, 사람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뜻, 요즘말로 ‘민주화’를 이루어서 우리들 뜻대로 살겠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백성을 포기하고 이방 백성들처럼 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렇게 강력하게 반대하실 수밖에 없는 거지요.


❚ 누가 왕이신가?

이토록 하나님과 사무엘 선지자 모두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네 저희들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고 순순히 물러났을까요? 천만에요. 오히려 더욱 강하게 반발하며 자기들 요구를 들어달라고 떼를 씁니다. 19~20절입니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의 말을 거절했다네요. 한 번도 그렇게 안 했던 백성들이 사무엘의 말을 거부하고 하나님 말씀도 거부합니다. 그만큼 정신이 나간 거지요. 결국 사무엘 선지자와 하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고 그렇게 세워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사울입니다. 자기네들 소원대로 왕을 세우니 처음엔 정말 좋았지요. 왕만 뽑으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잘 살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런 백성들 생각이 엄청난 착각임이 입증되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울이 용감하고 위대한 왕이 되어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승장구하며 저 지긋지긋한 원수 블레셋에게도 승리하는 감격을 맛보거든요. 그런데 이 감격, 그리 오래 못 갑니다. 사울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못 돼서 다 끝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일 설교 때 들려드리겠습니다.

자,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왕을 그토록 갈망하고 왕정제도를 소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범한 가장 큰 착각은 뭐냐 하는 겁니다. “전쟁만 나갔다 하면 맨날 깨져, 왜 우린 맨날 블레셋만 만나면 박살이 나는 거지? 아! 맞다, 우리에겐 없는데 저들에게 있는 것, 그게 바로 왕이잖아?”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진 이유는 왕이 없어서도 아니고, 블레셋보다 군사 숫자가 적거나 무기가 뒤떨어져서 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나와요. 그것은 바로 따라 합시다. ‘만군의 여호와, 거룩한 전쟁, 성전(聖戰)’이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알려주는 본문이 바로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바로 그 유명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다윗이 물리치는 장면인데요, 45절에 나오는 다윗이 한 말을 살펴봅시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이 본문에 대해 자세한 말씀 안 드릴 겁니다. 다음 주 설교시간에 해야 하거든요? 딱 한 마가지만 말씀드리려고요. 다윗은 어마어마한 키와 덩치의 골리앗, 그것도 엄청나게 큰 방패와 칼과 창으로 무장한 이 거인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 이놈아! 너는 그 큰 키와 무기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만군(萬軍)의 여호와’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로 만군, 즉 많은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47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거룩한 전쟁(성전)’이라는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은 절대 군대 숫자나 무기나 그 무엇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오직 한 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과 능력을 의지해 싸우는 것이기에 모든 전쟁의 승패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한분께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 진짜 이유는 잊은 채 오직 왕이 있어야, 왕만 있으면 이긴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만 진정한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심을 부인하고 사람을 대신 왕으로 세워 이방백성들처럼 살려고 착각한 것입니다. 결과는 당연히 비참한 패배지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일이 대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예, 상관있습니다. 아니, 상관있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도 이 진리는 우리에게 똑같이, 완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는 절대 무기군대 숫자이나 제도에 달린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서 늘 환경을 탓하고 이런 것들을 쌓아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환경이나 제도나 외적인 조건이 내 인생을 성공과 승리로 이끌어 줄까요? 돈? 명예나 권세나 지위? 외모? 건강? 이런 것들로 가능할까요?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역시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진정한 인생의 승리와 성공과 행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다윗인 겁니다. 첫 번째 왕인 사울이 버림받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고, 두 번째 왕 다윗이 선택 받아 왕이 된 이유도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얘가, 이 왕이 정말 내 이름만 의지하고 전쟁터에 나가나, 아니면 그것만으로는 불안해서 다른 의지할 것을 찾는가?” 딱 이거 하나만 보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내 인생을 이런 방법으로 테스트 하십니다. 딱 하나만 보십니다. “얘가 하나님 나 하나만 자기 인생의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고 나만 의지하는 지, 아니면 하나님 한 분만으로는 불안해서 다른 것들을 왕으로 세우려 하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너의 인생 책임진다. 오직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고 아무리 말씀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니요,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세상 사람들처럼 다른 왕을 주세요. 저도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처럼 살고 싶어요.”  떼를 쓰는지 보신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우기지 않고 떼쓰지 않고 “예, 맞습니다.” 내 인생의 진정한 왕이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아멘입니까? 내 가정과 우리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아멘? 이 나라 이 민족의 진정한 통치자요 왕도 하나님뿐이십니다! 아멘? 이렇게 인정하고 선언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내 인생을 반드시 축복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내 가정과 교회 이 나라 민족을 승리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내 스펙, 능력, 조건이나 환경 이런 거 안 보시고 딱 한 가지 “얘가 나를 자기 인생의 유일한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는가?” 하나만 보신다고 했지요? 그러니 나는 그분만을 왕으로 인정하고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나머지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말씀 마치면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다같이 찬양합시다(악보 보여주기)(세 번 연속으로 찬양하되 세 번째손을 높이 들고, 반주 없이 목소리로만 찬양 후 기도).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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