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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과 후(後) (3) : "시작은? 나중은?"
  • 설교일2019-07-21
  • 성경본문욥기 8:5-7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147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설교내용

❚ 욥기에 대한 오해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놓고 볼 때 욥기만큼 가장 사랑받는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오해를 받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욥기가 가장 사랑받는 책일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욥기의 주제는 ‘의인의 고난’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 중에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도 고난을 받을 때 욥기를 읽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지요. 고난당하는 성도들 중에 “목사님, 제가 요즘 욥기를 읽으면서 참 위로를 많이 받습니다.” 하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욥은 의인이었고 하나님을 지극히 잘 섬긴 사람입니다만 사탄의 참소로 엄청난 고난을 받습니다. 이 고난을 욥이 이겨내고 마침내 하나님께 인정받고 더 큰 복을 받는 과정을 읽으면 우리 성도들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럴 때 꼭 욥기를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욥기 8: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중 7절은 욥기 중에도 가장 사랑 받고 널리 쓰이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이 언제 제일 많이 쓰이는지 아세요? 예, 개업할 때입니다. 개업예배 때 교회에서 액자를 가져가면 제일 많이 쓰여있는 성구지요. 그래서 식당이나 가게 가면 이런 액자를 보고 “아, 이 분 교회 다니는구나, 효자교회 다니네.” 하고 알 수 있잖아요? 그 액자에 제일 많이 나오는 성구가 바로 이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이렇게 성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책인 동시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책이라고 했지요? 도대체 어떤 오해를 받을까요? 그 오해 첫 번째는, 욥기를 모든 고난 받는 성도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닙니다. 고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죄를 지어서, 내가 실수하거나 허물이 있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또 하나는 나는 죄가 없는데, 나는 의로운데, 나는 아무 실수나 허물이 없는데 당하는 고난, 즉 의인의 고난입니다. 욥은 후자에요. 욥은 의인이고 아무 죄도 없는데 사탄이 참소해서 고난을 당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어떤 게 더 많겠습니까? 당연히 내가 죄지어서, 내가 실수하고 원인을 제공해서 겪는 고난이 ‘월등히’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욥기를 읽고 위로를 받는 것은 뭔가 경우가 안 맞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 내가 왜 고난당하는지 기도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가 죄를 짓고 실수해서 고난을 당한다면 무조건 무릎 꿇고 회개하세요. 그런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허물이나 죄가 없어. 그런데 욥처럼 고난을 당한다, 그러면 욥기를 읽고 위로를 받고 욥처럼 행동하면 된다 이겁니다.

욥기에 대한 두 번째 대표적인 오해는 욥의 친구들 같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욥이 고난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 곳에서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찾아오고 나중에 엘리후라는 친구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재산도 자녀도 가족도 건강도 소유란 소유는 다 잃은 욥을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이 친구들이 오히려 욥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여러분, 위로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위로를 정말 ‘잘’ 해야지 안 그러면 오히려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다른 히브리인들처럼 전형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고,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인과응보 사상에 젖은 친구들이 볼 때 욥이 고난당하는 것은 반드시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거다, 욥이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이렇게 판단하고 나름대로 결론 다 내리고 찾아온 겁니다.

그래서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먼 데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친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분통을 터트린 겁니다. “친구야! 너는 분명히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징벌을 받는 것인데 왜 회개하지 않고 나는 죄가 없다고 계속 주장만 하냐?”며 욥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지만 욥은 정말 무죄한 사람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징벌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의인의 고난, 즉 죄 없지만 고난을 당하는 억울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오랜 설전이 오가고 욥기의 대부분 내용은 이들 사이에 오간 논쟁을 지루하게 기록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처럼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겁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요.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죄 안 짓고 살면 반드시 복을 받고, 내가 불순종하고 죄 지으면 복 못 받고 오히려 벌을 받는다.” 이거 맞습니까? 네, 맞아요. 분명히 성경이나 신명기는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의인의 고난도 있어요. 예수 믿는사람도 고난이 있습니다. 게다가 정말 예수 잘 믿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도 고난을 겪습니다. 인과응보만 가지고 얘기하면 이런 고난은 설명이 안 돼요. 그래서 우리는 인과응보든, 뭐든, 사람의 모든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분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처럼 내 머리로만, 내 생각이나 상식이나 경험으로만 예수 믿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아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특히 타인의 고난이나 아픔을 대할 때 욥의 세 친구처럼 굴면 안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높은 자리에 서서 무심하게 이야기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너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거 아니야?” 게다가 그들은 욥이 당하는 아픔에는 전혀 동참하지 않고 심판과 정죄를 말합니다. 적어도 친구의 고통과 고난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해야 하는데 정말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의 이야기처럼 무덤덤하게 말합니다. 이런 친구들의 태도가 고난을 당하는 욥에게는 고통을 두 배로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도 육체적인 고난보다 십자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무리들의 거짓 증언과 조롱과 모욕이 예수님을 더욱 아프게 한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오직 자기 생각이나 판단에 의지해 고통당하는 친구가 왜 그런 일을 당하는지 원인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가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심판자가 되어 심판했지요.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친구든 가족이든 성도든, 누구든지 고난을 당하면 판단하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서 위로만 해주면 되는 겁니다. 정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손잡아 주고 안아주면 됩니다. 괜한 말로, 혹은 판단으로 그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정말 큰 죄가 됩니다. 저도 겪어본 일이지만 간혹 교회에서 아픔을 당하거나 힘든 분들을 보며 위로는커녕 수군거림과 판단과 손가락질로 더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정말 큰 잘못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고난당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절대 재판관이나 심판이나 군중들(불구경하는) 되지 말고 늘 ‘좋은 말’과 진정한 사랑으로 위로만 하는 ‘위로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시작은? 나중은?

이제 욥기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마지막 세 번째가 남았습니다. 그 세 번째 오해는 바로 오늘 본문인 그 유명한 욥기 8:7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무슨 오해냐? 일단 이 욥기 8:7 “시작은 미약해도 나중은 심히 창대해 진다.”는 이 말씀은 욥이 한 말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 좋은 말씀을 욥이 한 줄 아는데 아닙니다. 집에 가서 읽어보세요. 이 말은 욥의 친구인 ‘수아 사람’ 빌닷이 한 말입니다. 빌닷은 전형적인 인과응보 사상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러니 빌닷의 눈에는 욥이 이런 엄청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뭔가 욥과 그 자녀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욥기 8장 곳곳에는 이런 빌닷의 생각이 나타납니다. 먼저 욥기 8장 1~3절을 읽습니다.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이 자꾸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하니까 “너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헛소리 할 거냐?” 책망하면서 어찌 하나님이 정의를 공의를 굽게 하고 아무 까닭 없이 이런 일을 하시겠냐고 말하는 겁니다. 나아가 빌닷은 심지어 4절에 이런 말까지 합니다.

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욥의 자녀들이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 그렇게 한꺼번에 집이 무너져 다 몰살당한 거 아니냐는 거에요(욥 1:19). 생각해 보세요. 교통사고가 나서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그 집에 문상 가서 한다는 소리가 “당신 자녀들이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겁니다.”라고 말하다니요. 설마 정말 그런 말까지 하랴 싶지요? 저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어떤 집사가 젊은 딸을 잃은 다른 집사님에 대해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뭔가 죄 지어서 그런 일 당한 거 아니야?” 하더군요. 정말 나쁘지요. 불행을 당한 분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합니까? 자기가 하나님입니까? 재판관입니까? 우리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정말 한 사람도 없겠지요.

여러분,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 욥기 8장 5~7절인 거에요. 한번 봅시다.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닷은 욥 자신과 자녀들이 죄를 지어서 이런 고난을 당한 거라고 말하더니 급기야 “욥아! 지금이라도 너 회개하고 하나님 찾고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너 용서하시고 너를 돌보시고 평안하게 하실 거야.” 이렇게 말한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회개하면 지금은 네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잃고 맨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하나님이 너를 다시 일으켜 나중은 심히 창대해질 거다.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자! 여러분께 한번 물어봅시다. 이 빌닷의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정답은 이겁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빌닷의 말은 당시 일반적인 상식인 ‘인과응보 사상’에 의하면 맞는 말입니다. 빌닷, 똑똑한 사람이에요. 자기 지식과 상식으로 똑 부러지게 친구한테 말해준 거에요. “너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두 가지 이유에서 완전히 틀린 말이에요. 첫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욥과 자녀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난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죄 없는 자, 의인의 고난입니다. 둘째는 아무리 맞는 말, 옳은 말이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누가 와서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이런 식으로 하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옵디다. 오히려 거부감만 커져요. “뭐? 너 그렇게 살지 말라고?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이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렇지요? 기왕이면 좀 좋은 말로 하면 얼마나 좋아요? “친구야! 많이 힘들지? 널 위해 기도할게. 힘내라.”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잖아요? ‘옳은 말’ 하지 말고 무슨 말? ‘좋은 말’ 하라고요.

친구 빌닷은 똑똑한지는 모르겠으나 공감능력(共感能力)은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와도 사회생활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는 좋은데, 지식은 가득한데 남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큰일을 못하고 귀한 일들을 이루어가지 못하지요.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지 말고 나는 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남을 깊이 이해하고 품어주고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늘 좋은 말을 쓰며 사람을 세워가는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결국 빌닷이 말한 “시작은 미약해도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금은 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만 잘 의지하면 나중은 심히 잘되고 창대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너 정신 차리고 회개해! 그래야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망한 거 다 회복한다.”는 뜻인 겁니다. 아시겠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참 욥기를 많이 오해하고 있었구나 싶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빌닷의 말이 신앙적으로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빌닷은 친구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잘못 짚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충고를 한 셈이 되었지요. 원인을 잘못 알고 충고하니 친구 욥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상처만 더 받았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고 한 이 말이 결국은 정말 욥에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놀랍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욥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욥기 전체를 꼭 한번 읽어보세요. 내용이 참 특이해요. 1~2장에서는 욥이 고난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3장에서는 이런 엄청난 고난을 연속적으로 당한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내가 왜 태어났냐.”고 한탄을 합니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그 믿음 좋은 욥이 이런 말까지 다 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4장부터 37장까지 앞서 말한 대로 욥과 친구들 사이에 지루하게 설전이 오갑니다. 그러더니 38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침묵하고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38장부터 4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욥아! 네가 아무리 너 자신이 의롭다고 말하지만 너의 고난 뒤에 숨은 내 큰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하였구나!

욥은 내가 무죄한데 의로운데 왜 이런 엄청난 고난을 주시냐고 하나님께 항변하고 친구들과 격렬하게 논쟁했지만, 욥은 그 의인의 고난 뒤에 심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큰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그제야 회개하고 42:5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또한 욥이 이런 고백도 합니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나를 고난으로 단련하고 연단해 불순물이 모두 빠진 순금, 100% 순도의 금처럼 순수하고 순결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내가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지식으로만 알았지만 이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고난의 유익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런 귀한 깨달음을 얻고 고백한 욥을 하나님은 크게 칭찬하시며 그에게 곱절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더라도, 또 이해 못할 고난과 실패가 있더라도 우리는 욥처럼 그 고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계획을 믿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빌닷의 말처럼 반드시 나중심히 창대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왜 나만 받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가사 중에서)

이 가사처럼 도저히 이해 못할 고난 때문에 “하나님, 왜 나만?” 불평, 원망 나오지만, 고난의 뒤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을 볼 수 있다면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친구 빌닷의 말은 결과적으로 욥에게 정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욥기 8:5~7 말씀을 봅시다.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사랑하는 효자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비록 고난을 당하고 실패도 하고 심히 미약하고 연약할지라도 욥처럼 끝까지 하나님 붙잡은 손 놓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잘못된 생각과 부족한 판단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면 정말 친구 빌닷의 말처럼 반드시 나중을 심히 창대하게 하시고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현실을 극복하고 결론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복 받은 성도들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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