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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타이밍 (3) : "헌신 타이밍"
  • 설교일2020-09-13
  • 성경본문에스더 4:12~17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95
설교게시판 내용
설교내용
본문내용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 헌신 타이밍

여러분! 헌신에도 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인생에도 타이밍이 중요하고 신앙에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헌신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왜냐? 아무리 헌신하고 싶어도 건강이 안 따라주면 못 해요. 상황이 안 따라주면 아무리 원해도 못해요. 건강할 때, 시간 될 때, 환경 따라줄 때, 다른 일 바쁘다고 헌신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로 하나님 일 못하다가 나중에야 좀 헌신해볼까 하는데 그때는 건강 안 따라주고 시간이 안 되고 환경이 도저히 안 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는 아무리 후회하고 내가 그때 왜 못했을까, 왜 그리도 도망 다니고 피했을까 아쉬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타이밍이 맞을 때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조교를 하며 모시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어요. 그 교수님은 무척이나 바쁜 분인데 그 바쁜 시간 쪼개서 전국으로 다니며 설교와 강의를 했습니다. 심지어 대여섯 시간씩 차타고 가야하는 데서도 요청이 오면 가시고, 저 시골 작은 교회 대여섯 명 모이는 곳에도 요청이 오면 마다하지 않고 가시는 거에요. 하루는 제가 물었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바쁘신데 어떻게 그 먼 곳도, 작은 시골교회도 다 가세요?” 그러자 교수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가고 싶어도 날 불러주지 않을 가 있어요. 그러기 전에 불러줄 때 부지런히 가서 섬겨야지요.” 이 말씀이 참 제 기억에 남습니다. “아하! 이것도 다 때가 있구나. 가고 싶어도 안 불러줄 때가 있고 가고 싶어도 건강이 안 따라주고 몸이 안 따라줄 때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헌신도 마찬가지에요. 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니까요. 헌신의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게 아니거든요. 오늘 설교는 원래 오늘 우리교회 항존직 1차선거를 예상하고 준비한 겁니다. 헌신에 대해 설교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코로나 재확산 때문에 항존직 선거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일이 다 그래요. 계획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 하고 싶은데 못 할 때가 있어요.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항존직 선거는 못해도 오늘 계획한 설교는 그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선거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꼭 들어야 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은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보세요. 오늘도 그렇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서 하던 거의 모든 일이 중단되었잖아요. 헌신하고 싶어도 못하고 주의 일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헌신은 때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헌신 타이밍>입니다. 오늘 설교 잘 들으시고 여러분 모두가 이 헌신 타이밍을 잘 알고 꼭 잡는 충성된 일꾼들 되시기 바랍니다.


❚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에스더는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포로로 끌려온 유다인 출신이었고 부모도 없는 고아소녀였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백성이, 그것도 부모도 없고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소녀가 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 바사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진 거지요. 에스더가 어려서 부모를 잃자 사촌오빠인 모르드개 손에 자라게 됩니다. 둘이 나이차이가 많이 났는지 모르드개는 삼촌의 딸 에스더를 어려서부터 수양딸처럼 키웁니다. 모르드개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에스더에게 절대 네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마라, 그러면 왕후가 될 수 없을 거다, 왕후가 된 후라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 했고, 이에 따라 자기 출신을 숨긴 에스더를 놀랍게도 아하수에로 왕이 첫눈에 반해 왕비로 삼게 됩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런데 이 모르드개에게 큰 위기가 닥쳐옵니다. 아니, 모르드개 한 사람뿐 아니라 유다 백성 모두에게 엄청난 위기가 닥쳐온 겁니다. 하만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잘 보여 최고대신 자리에 오르는데 다른 신하들은 다 자기 앞에 꿇어 절하며 알아서 기는데 왕궁 문지기에 불과한 모르드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겁니다. 아마 신앙적인 이유 때문이었겠지요. 최고대신 앞에 경의를 표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정도는 문제없지만 본문에는 분명히 ‘꿇어 절하라’고 했으니 거의 ‘신적(神的)’인 경배를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모르드개의 신념 때문이었을 겁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소위 ‘괘씸죄’에 걸리게 됩니다. ‘괘씸죄’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그리고 “살인, 강도죄보다 더 무서운 게 괘씸죄다.” 이런 말도 들어보셨지요? 높으신 분, 힘 있는 분에게 괘씸죄에 걸리면 그야말로 뼈도 못추립니다. 거만해질 대로 거만해진 하만은 이런 뻣뻣한 모르드개가 너무 괘씸하고 미웠던 거지요. 그래서 모르드개만 이 ‘괘씸죄’로 죽이려는 게 아니라 모르드개가 유다인임을 알고 유다인 모두를 몰살시켜 씨를 말리려는 무서운 계획을 꾸미게 됩니다.

하만은 유다인들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며 그들을 진멸할 조서를 내려달라고, 그렇게만 하신다면 내가 거금 일만 달란트를 왕께 드리겠다고 제안해서 드디어 왕의 조서를 받아들게 되고, 그해 12월(아달월) 13일을 D-Day로 잡아 그날 하루에 바사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을 동시에 다 몰살시키고 그 재산을 탈취하기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모르드개뿐 아니라 전국에 사는 유다인이 단 하루에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밖에는 자신과 유다 민족을 하만의 손에서 구원해주실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이 애통하고 금식하며 울고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동시에 모르드개는 내시 하닥을 통해 사촌동생인 왕비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전에 내시 두 사람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고 왕에게 알려 그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계략에 빠져 일전에 자기 목숨을 구해준 모르드개를 죽이고 그 민족을 다 몰살하려는 음모를 미처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에스더 네가 왕에게 나아가서 이 음모를 알리고 나와 내 민족의 생명을 구하라고 요청한 것이지요.

여러분! 아십니까? 이 요청을 받은 에스더 왕비가 뭐라고 말했는지요? 성경을 좀 아시는 분은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예, 바로 그때 에스더가 그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말을 하고 용감하게 왕에게 나아갔지요.” 땡! 틀렸습니다. 에스더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뭐라고 했냐? 핑계를 댑니다. “나는 지금 왕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고 핑계를 댄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얘야, 이제 나를 위해 일할 때가 되지 않았니?” 하고 우리를 부르실 때 에스더처럼 핑계를 대며 뒷걸음을 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핑계는 주로 무엇입니까? 물론 이때도 에스더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4:11에 나오는 에스더의 말(핑계?)을 봅시다.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옛날에는 암살이나 독살을 당한 왕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니 왕은 자신을 언제 해칠지 모르는 암살의 위협이 가장 두려웠겠지요. 그래서 바사 왕국에서는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그 누구든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궁전 안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가면 죽음을 당하도록 법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아무리 왕후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벌써 삼십일이나 못 받고 있었습니다. 글쎄요. 아하수에로 왕이 정무에 너무 바빠서 왕후를 안 찾은 걸까요? 그보다는 다른 여인이나 후궁에게 빠져서 왕후를 안 찾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왕 주위에는 늘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안 그래도 왕의 사랑을 잃은 지 오래인데 지금 왕 앞에 나아갔다가는 이 법에 의해 틀림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에스더는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모르드개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 나름 이유가 있었던 거에요.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향해 불같은 한 마디를 던집니다. 4:14입니다.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야! 네가 만약 죽음이 두려워 지금 왕에게 안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 줄 아냐?” 에스더가 그 일 안 한다고 하나님이 못하실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 다른 사람을 사용하셔서라도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에스더와 그 가문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멸망당할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면서 모르드개가 한 위대한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너를 왕후에 오르게 한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냐?” “바로 이럴 때, 이렇게 온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를 위해 하나님이 너를 왕후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게 아니겠냐?” 그러니 정신 차려라! 네가 이 사명 놓치고, 이 타이밍을 놓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한다면 물론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다른 누구를 사용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실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와 네 가문 모두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 것이다. 왜? 사명 주셔서 그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 사명 거부하면 그 자리도 빼앗기고 다 망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 주시고, 시간 주시고, 아주 풍족하지는 않아도 재물 주시고, 지위나 권력도 주시고, 생명까지 주신 것은 다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건데, 하나님이 나를 딱 쓰시려고 할 그때 사용하라고 주신 건데 우리가 온갖 핑계를 대며 그 타이밍 놓치고 그 사명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안 한다고 하나님이 못하실까요? 아니요. 우리가 안 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실 일 다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을 가장 싫어하시니까요.


❚ 에스더의 결단과 하나님의 응답

이 모르드개의 불같은 말을 듣자 자기 목숨 때문에 주저하던 에스더는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남긴 말이 그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입니다. “그래요! 오빠 말이 맞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죽으면 죽겠다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왕 앞에 나아갈 테니 오빠는 가서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모아 사흘간 금식기도를 해 주세요! 나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갈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런 뜻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에스더 왕후는 “죽으면 죽이리이다” 일사각오로 왕 앞에 사전허락도 없이 나아갑니다. 평상시 같으면 아무리 왕후라도 법에 의해 사형을 당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스더 5:2~3 말씀 읽지요.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왕은 에스더를 보고 “매우 사랑스러워서” ‘금 규’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금 규’란 왕이 손에 드는 금으로 만든 지팡이인데 이 금 규를 내미는 것은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는 뜻이에요. 죽어야 마땅한 왕후를 이렇게 용서하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의 소원을 뭐든지 들어주겠다.”고까지 말한 이유가 대체 뭘까 참 궁금합니다. 게다가 앞서 나온 것처럼 왕은 삼십 일 동안이나 왕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게 도대체 뭘까 너무 궁금하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성경에 설명이 없습니다.

언젠가 저희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건 아마 에스더가 사흘 동안 금식했기 때문일 거다.”라고요. 여자가 며칠 금식을 하면 얼굴이 핼쑥한 게 너무 예뻐 보인다는군요. 아무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에스더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왕의 눈을 주장하시고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에 에스더가 그리 예뻐 보인 것이고 그 때문에 유다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때 에스더는 왕에게 하만과 함께 자신이 베푼 잔치에 오기를 요청하고 왕은 기꺼이 이에 응합니다.

바로 그 잔치자리에서 에스더는 하만의 음모에 대해 폭로합니다. 더불어 자신이 그동안 숨겨온 유다 민족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에스더가 민족을 구하려 금식하고 나아가니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신 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던 하만은 오히려 일족이 다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 역사를 일으키신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일을 피하려고 핑계 대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위대한 모세도 그랬고 선지자 요나도 그랬습니다. 부자청년은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피하고 싶어 그럴듯한 핑계들 참 많이 댑니다. “‘나중에 할께요. 시간 좀 나면요. 돈 좀 벌면요. 애들 좀 키우고요.” 하나님은 이런 핑계를 들으면 뭐라고 하실까요? 우리를 재차 설득하시겠지요. 그래도 우리가 끝내 회피하고 불순종하면 결국 “그래, 알았다.” 하시고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시겠지요. 우리는 그 엄청난 특권을 차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하나님이 사명 맡기신 그 타이밍 놓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반드시 귀하게 사용하실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것, 아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이 무엇입니까? 지위나 권력이나 재물, 건강이나 시간 등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여러분에게 맡기신 이유가 뭘까요? 때가 되면 쓰시려고 맡긴 겁니다. 정말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 내가 전에 너한테 맡긴 거 있잖아? 내가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게 필요하거든? 지금 내놔봐라.”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바로 그 순간, 그 타이밍에 반드시 응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타이밍에 쓰시려고 내게 이 모든 걸 주셨구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에스더처럼 우리에게 헌신(獻身)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타이밍에 응답하고 순종할 수 있다면, 진정한 용기로 결단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에스더처럼 다 책임져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헌신 타이밍에 순종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코로나도 이겨내고 모든 환난과 위기 극복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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