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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설교테스트이미지

전(前)과 후(後) (2) : "구원, 그 이전과 이후"
  • 설교일2019-07-07
  • 성경본문갈라디아서 2:20
  • 설교자이하준목사
  • 조회수52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설교내용

❚ 구원의 감격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은 전 세계적으로 성도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부르는 찬송인데 존 뉴턴(John Newton) 목사(사진1) 작사입니다. 그는 172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는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려 했으나 그가 겨우 6살 때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신앙을 잃어버린 존 뉴턴은 11살 어린나이에 선원인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고, 나중에 흑인노예를 수송하는 노예무역선 선장이 됩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납치된 흑인은 가축 이하의 대우를 받고 수송선의 위생상태가 열악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수없이 죽어갔는데도 선장 존 뉴턴은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신앙이 없으니 아무 죄책감도 없던 거지요.

1748년 존 뉴턴이 22살 되던 해 그에게 극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배가 폭풍우를 만나 좌초될 위기에 빠져 존 뉴튼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으로 기도하기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려달라고 기도했겠지요. 그런데 점점 기도가 절실해집니다. 평생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배는 기적적으로 폭풍우를 벗어나 무사히 항구로 돌아왔고 그는 이 날을 제2의 탄생일이라고 고백합니다. 1755년 존 뉴턴은 선장을 그만 두고 신학을 공부하여 성공회 목사가 되었고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돌아보며 1772년 찬송〈Amazing Grace>를 쓰게 됩니다. 이 찬송을 통해 그는 흑인 노예무역을 한 것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내 큰 죄에도 불구하고 구원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Amazing Grace>, 그 제목 그대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을 찬양한 위대한 찬송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효자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의 감격이 있으십니까?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고 구원 받은 감격과 감동이 내 마음에 있으십니까? 그래서 내 평생 그 은혜 잊을 수 없어 늘 감격하며 사십니까? 그 은혜만 생각하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눈물이 나십니까? 아니면 아무 느낌도 없고 무덤덤하게 습관적으로 형식으로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이러면 안 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징조가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하나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성도의 유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신앙생활 열심히 안 하는 성도들, 교회 한주 나오면 두 주, 세 주 빠지는 성도들입니다. 둘째는 열심히 교회는 다니는데 구원의 감격과 은혜가 없는 성도들, 무덤덤하게 습관과 형식으로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성도들입니다. 이 두 부류가 모두 하나님과 목회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데 이 둘 중에 누가 더 위험한 영적상태인가? 두 번째입니다. 열심히 교회는 나오는데 감격이 없는 성도, 무감각하고 무덤덤한 성도, 이들의 영적 상태가 훨씬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만큼 구원의 감격은 중요한 겁니다. 이 구원의 감격에 대해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2절에 나온 것처럼 구원의 즐거움,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의 감격을 내게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늘 내 마음 속에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쳐흐르게 하소서! 이 기도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가장 간절한 기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십자가와 부활, 주님과 함께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20은 이 구원의 감격과 은혜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사울이었을 때 그는 유대교를 위해, 율법을 위해, 자기의 신념을 위해 기독교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사울이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러 가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지고 극적으로 회심(回心)합니다. 극적으로 예수님 만나 구원받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런 놀랍고도 극적인 구원과 회심을 체험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게 바로 오늘 갈라디아서 2:20 말씀인 거에요. 이 고백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위대한 구원의 진리들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곳에서 함께 못 박혀 죽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찬송가 147장에 그 답이 있습니다. 1절 가사만 볼까요?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이 가사처럼 우리는 영적으로 골고다 언덕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겁니다. 2천 년 전 골고다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바로 그 십자가 처형의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을 뿐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거에요. 누가복음 23:39~41을 교독합시다.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좌우편에 함께 못 박힌 두 행악자, 살인강도들 중 한 명이 주님을 조롱하고 비방합니다. “네가 그리스도라면서? 메시야 구세주라면서? 그럼 너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봐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죄수가 그를 꾸짖습니다. “우리는 너무 흉악한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 달려 마땅한데 어찌 저 분을 모욕하느냐? 저 분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인데 십자가에 달리신 거다.” 참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그 죄수는 이렇게 주님께 간구하지요. 42~43절입니다.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 자비를 구한 이 강도는(사진2)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고 낙원에 가는 은혜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실은 죄인이요 살인강도였습니다. 너무나 흉악한 죄를 지어서 정작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죄인은 우리였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때, 그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거지요. 나는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고,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이고요. 그래서 나는 비록 그 때 십자가 위에서 죽었지만 예수님 덕분에 이 구원 받은 강도가 된 것이란 말입니다.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찬송가 461장 2절)

오늘은 찬송을 많이 부르는데요, 저만 독창하게 두지 말고 찬송 나오면 같이 부르세요. 이 찬송처럼 우리는 구원받은 강도로서 그 때 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달려 죽은 것이라는 겁니다. 믿으십니까? 우리에게 이 체험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는 체험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꼭 이 영적인 체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는 체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부활의 체험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죽기만 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다시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말입니다. 바로 이 체험을 앞에서 살펴본 찬송가 147장 5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님 그 무덤에서 나올 때

오~ 때로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이 찬송처럼 우리는 영적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주님 부활하실 때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했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체험 꼭 하셔야 합니다! 교회 아무리 오래 다녀도 이 두 가지 체험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신앙이 절대 안 자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십자가와 부활, 주님과 함께 이 두 가지 체험 꼭 하시길 축원합니다!


❚ 다시 산 나는?

둘째, 갈라디아서 2:20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 앞부분만 다시 한 번 읽읍시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앞서 우리는 반드시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다시 살아난 나는 놀랍게도 ‘내’가 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십자가 죽기 전에는 내가 살았어요. 내 삶의 주인이 나고, 오직 내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내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었어요. 그런데 십자가에 죽었다가 살아보니 내 안에 내가 없어요. 나는 다 죽었고 오직 예수님만 살아계신 거에요.

가수 조성모가 불러서 유명해진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은 ‘시인과 촌장’이라는 듀엣(들어는 보셨는지요) 멤버인 하덕규(사진4)라는 분입니다. 하덕규 씨는 대중적으로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실력파 가수인데 아주 좋은 크리스천으로 기독교 정신을 담은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고 지금은 목사님입니다. 이 <가시나무>라는 노래도 가사를 보면 가요가 아니라 복음성가 수준이에요(반주자 피아노 배경음악 잔잔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이 없대요. 내가 너무 많고 내 자아가 너무 강해서 당신(예수님)이 들어올 틈이 없대요. 내 속에 가시가 날카롭게 돋은 가시나무 같다네요. 놀라운 가사 아닙니까? 혹시 우리의 모습이 이 <가시나무>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꽉 차 있고, 내 속에 내가 너무 강하고, 내 속에 온통 가시가 돋은 가시나무 같은 모습이 아닌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산 후 내 안에는 더 이상 ‘내’가 없습니다. 나는 다 죽고 내 자아는 다 죽었습니다. 오직 내 안에는 예수님만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만 내 안에 가득 차 계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기 전과 후 내가 이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구원 이전과 이후의 내가 완전히 달라진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꼭 이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갈라디아서 2:20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주님과 함께 부활했다고 했는데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다시 살아난 내가, 부활하여 새 생명 얻은 내가 이제 누구를 위해 사는 ‘내’가 되느냐 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입니다. 오직 나밖에 모르고 나 자신의 영광과 내 이익과 성공과 내 가족과 내 삶의 행복만을 위해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산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누구를 위해 사는 나냐? 갈라디아서 2:20 뒷부분만 읽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자신을 버려 십자가에 죽으신 그 분! 그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내가 된다는 겁니다. 전에는 나 자신의 영광과 성공과 행복만 위해, 기껏해야 내 가족 내 자녀만 위해 살던 내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사는 나로 변화되었다는 겁니다.


❚ 구원, 그 이전과 이후

앞서 소개했던 존 뉴턴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구원 받았으면 반드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만나고 구원 받았다면! 반드시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는데도 생긴 것, 인품, 삶의 방식, 성격 하나도 안 변하면서 난 구원받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론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갑자기 외모가 달라져서 잘 생겨진다든지 예뻐지는 것도 아니에요. 말투나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나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오!” 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겉으로 봐서는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뭐가 그리 달라져야 한다는 건가? 무엇보다 인생의 목표와 인생의 방향이 달라져야 합니다. 앞에서 그랬지요? 전에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는데, 그래서 오직 내 안에 나만 가득 차 있었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았는데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없고 주님만 가득 차 계시다고요. 전에는 오직 나만 위해 살던 내가 이제는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게 되고, 그래서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구원 받은 자녀가 된 후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또한 인생의 방식도 바뀌게 됩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바뀌는 거에요. 전에는 그저 나만 위해, 내 이익을 지키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던 내가 참으로 초연해지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 영광 드러낼까 하며 살게 되지요. 그래서 화내고 분노하고 싸우던 내가 조용히 물러날 줄 알고 져줄 줄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말과 행동도 바뀌게 됩니다. 어떤 분이 교회 다니기 전에 목소리가 “어이! 어이” 하고 톤이 높고 날카롭던 분이, 교회 다니면서 갑자기 톤이 낮아지고 목쉰 소리가 되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게 ‘Holy Voice’ 거룩한 목소리래요. 그런 거 말고 정말 말투가 변하고 언어가 변해야 해요. 남을 아프게 하고 찌르던 말이 위로하고 힘주는 말로 변하고, 남 흠잡고 공격하고 함부로 생각나는 대로 내뱉던 말이 이제 생각하고 말하고 좋은 말만 하려고 애쓰면서 그 말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돼요.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믿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4:13 말씀 읽지요.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는 구원 받은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처럼 반드시 장성한(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첫 밀과 보리를 추수하고 난 후 구원 받기 전 같으면 이럴 겁니다. “내가 땀 흘리고 수고해서 얻은 첫 열매다.” 하지만 구원 받은 후 사고방식이 달라져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고백하며 그 첫 열매를 드린 것이 바로 맥추절입니다. 이게 내 삶의 가치관과 기준이 달라지니 가능한 일입니다. 시기적으로 2019년 한해의 절반이 지난 이 때,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맞아 한 해의 절반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남은 절반을 하나님께 맡기고 부탁하는 감사의 절기를 뜻깊게 보내면서 저와 여러분은 무엇보다 구원 받은 자로서의 감격과 감사를 누리며 구원 이후! 구원 받은 자답게 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감사하는 성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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